그녀는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그녀는 시대의 고통을 '듣는' 작가다.
2016년이 그랬고,
2024년이 그렇다.
신기하게도 시대가 하수상할 때마다
전 세계는 그녀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처연하기도 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녀의 소설에 울림이 있는 이유는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소설이 아니라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소설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죽음에서 삶으로의 방향은 비가역적이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에는 가능하다고,
반쯤 죽어 있던 사람이
단 한순간 삶으로 건너오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말한다. 자기는 그런 얘기를
쓰고 싶다고.
오늘은 고통을 '들을 줄 아는' 그녀의 위로가 필요한 날이다.
나아가 작금의 대한민국은
어린 시절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 '사자왕 형제의 모험'의 한 구절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 때문에 요나탄 형이 그처럼 위험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래?"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