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2024년 노벨문학상: 한강 (대한민국)

by Book끄적쟁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하고 시적인 산문" -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작별하지 않는다'는 기억과 상실, 고통과 생존이 얽힌 이야기다. 이 소설에는 '양자얽힘'처럼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깊이 연결된 관계들이 있다. 주인공 경하와 친구 인선이 그렇고 인선의 엄마와 그녀의 오빠 사이가 그렇다.


'양자얽힘'은 물리학에서 두 개의 입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의 상태 변화가 다른 쪽에도 즉각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이다. 위의 인물들은 물리적인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경하와 인선은 마치 같은 실에 매달린 듯한 존재들이다.


인선이 경하에게 남긴 제주 집에 가 달라는 요청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다. 그것은 인선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행위다. 경하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고, 결국 제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선이 남긴 흔적, 그녀가 보살피던 새, 그녀가 겪었던 시간들과 마주한다. 이 장면들은 마치 양자얽힘의 실험처럼, 인선이 존재했던 공간에서 경하가 그녀를 다시 불러오는 과정이다.


인선의 엄마와 그녀의 오빠 역시 그러하다. 제주 4.3 사건과 보도연맹 학살 같은 역사적 비극 속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오빠는,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 가족의 기억 속에 살아 있으며, 그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한 번은 굉도 속에 쌓인 수천 구의 몸들 중 하나로, 또 한 번은 피투성이 옷을 남기고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으로 '양자중첩'된 채로.


인선은 자신의 상처와 어머니의 상처를 함께 견디며, 그녀의 아픔은 경하에게까지 전이된다. 이는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육체가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 속 인물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겪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비극 속에서 그 트라우마가 세대를 넘어 전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죽음을 넘어 이어지는 존재, 헤어지더라도 결코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 관계, 그리고 그 연결을 통해 지속되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우리가 작별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완전한 헤어짐이 아닐 수도 있음을, 우리가 여전히 서로 얽혀 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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