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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끄적쟁이 Dec 12. 2022

뷰티 인사이드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13. 페스트, 체르노빌의 목소리 2부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13. 페스트, 체르노빌의 목소리 2부

(연관성이 있는 2권 이상의 책을 엮어 사유의 폭을 확장하는 이야깃거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먼저 읽으면 좋은 글]

전염병과 방사능은 전쟁을 닮았다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13. 페스트, 체르노빌의 목소리 1부


변화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동화

 

18번째 생일 이후로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바뀌는 남자, 김우진.

남자에서 여자, 노인에서 아이까지 천차만별, 랜덤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 혼란은 물론 연인인 홍이수도 적응하기 매우 힘들어한다. 누구나 '내면의 나'가 중요하고 껍데기가 아닌 생각이나 가치관이 '진짜 나'를 규정한다고 하지만, 외형이 적응이 힘들 정도로 매일 바뀌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이 진짜 사랑하고 있는 건 상대방의 외형인가 내면인가?

'뷰티 인사이드'는 이러한 질문을 아주 아름다운 동화 형식을 빌어 묻고 있다.

(영화처럼 박서준, 서강준, 이진욱, 이동욱으로 변하는 거라면 이 병이 저주인지, 축복인지 헷갈릴 것이다!)

실제로 스토리상 중요한 장면이나 좋은 장면들은 잘생긴 배우들로만 찍었다. 하한선이 김상호, 김희원이다.


하지만 '페스트', '체르노빌'이라는 이름의 영화에서는 다르다. 날마다의 변화가 아름답지가 않다.


리유는 환자가 상반신을 침대 밖으로 내민 채, 한 손은 배에 또 한 손은 목덜미에 대고 대단히 힘을 쓰면서 불그스름한 담즙을 오물통에다 게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애를 쓴 끝에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서 환자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체온이 39도 5부였고 목의 멍울과 사지가 부어올랐으며 옆구리에 거무스름한 반점 두 개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이제 그는 뱃속이 아프다면서 끙끙거렸다. 악취가 풍겨대는 입에서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골치가 아파서 눈물이 글썽글썽해진 채 툭 불거져 나온 두 눈을 의사에게로 돌렸다. 멍울은 전보다 더 크게 부어 있었고 손으로 만져보니 딱딱했고 목질이 박혀 있었다. 목의 멍울은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고 다시 구토가 시작되었다. 푸르죽죽해진 입술은 촛농 같았고 눈꺼풀은 무겁게 아래로 처지고 숨은 단속적으로 짧아지고 멍울의 통증 때문에 사지가 찢기는 듯하고, 자기 몸 위로 이불을 끌어 덮고 싶어 하는 듯, 어떤 보이지 않는 무게에 짓눌려 숨 막혀하는 것 같았다.


"이제 음식 할 필요가 없어요. 위장이 더는 못 받아들일 거예요."
그의 모습이 변해갔다.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화상이 겉으로 드러났다. 화상을 입은 입안, 혀, 뺨에 처음에는 작은 물집이 생기더니 계속 커졌다. 하얀 필름 같은 점막이 몇 겹씩 벗겨졌다. 얼굴과 몸이 파란색, 빨간색, 회갈색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나는 그 몸까지도 너무나 사랑했다!
14일간의 급성 방사선 장애 치료..., 그 열나흘 동안 사람은 죽어간다.
"잊지 마세요.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남편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전염도가 높은 방사성 물질이에요. 죽고 싶어요? 정신 차리세요."
"아직 젊잖아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제 사람이 아니라 원자로예요. 같이 타버린다고요."
나는 천 조각을 매일 갈았지만, 저녁때면 피로 흠뻑 젖었다. 천을 들어 올리면 내 손에도 살점이 달라붙었다. 




죽음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면


다가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입을 맞춰도 될까, 안 될까?


체르노빌레츠.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겪은 사람들을 칭하는 이름이다. 그들의 가족과 연인은 그 전처럼 그들을 사랑했다. 때 마침 임신 중이었던 한 여성은 다가가서 입 맞추고,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건강과 아기를 바쳐야 했다.

간 경화증과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난 여자아이(생후 4시간 만에 죽었고, 시신도 빼앗겼다. 무덤에는 이름도 없다. 영혼만이..., 그곳에 남았다). 사랑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분이 어땠을까?


어떤 아이는 죽은 채로 태어났다. 손가락도 두 개 모자란 채로. 

여자아이였다. 손가락이라도 다 있었더라면...


그런데 잔인하지만 차라리 죽음이 구원일지도 모른다.


"왜 나는 달라요?"
갓 태어난 딸은 아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루였다. 온몸이 구멍 하나 없이 다 막힌 상태였고, 열린 것이라곤 눈뿐이었다. 나는 아이를 더 낳을 수 없다. 용기가 없다. 산부인과에서 돌아온 후로 남편이 내게 키스하면 나는 벌벌 떤다. 우리는 이러면 안 돼. 이건 죄야. 두려워. 30분마다 오줌을 손으로 짜내야 하는 아이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더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울음을 참는다. 나는 울면 안 된다. 문마다 두드렸다. 편지를 보냈다. 실험이 목적이라도 내 딸 좀 봐주세요. 연구 때문이라도 데려가 주세요. 내 딸이 살 수만 있다면 실험용 개구리나 토끼가 되어도 괜찮아요.(운다) 수십 통을 보냈다. 오, 주님!
내 딸이 앓는 장애는 체르노빌 장애다.


병원에 입원한 다른 아이는 너무 아파 엄마에게 부탁한다.

"엄마, 나 못 참겠어요. 그냥 죽여주세요!"


아빠가 체르노빌에 일해서 백혈병에 걸린 한 아이는 겉모습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친구들 아무도 곁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아이는 아빠를 사랑한단다.


안드레이는 자기 허리띠로 목을 매었어요. 모두 체육 수업에 가고 없는 텅 빈 교실 안에서. 의사 선생님께서 안드레이한테 뛰지도, 달리지도 못하게 하셨는데, 안드레이는 학교에서 축구를 제일 잘했어요. 수술, 수술 전까지는...
여기에는 친구가 많이 있었어요. 율라, 카탸, 바딤, 옥사나, 올레크, 그리고 지금은 안드레이.
이제 하늘을 보면 하늘이 살아 있어요. 내 친구들이 거기 있으니까...


걔 중에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거나, 남편과 사별 후 재혼한 사람도 있다. 평생을 무신론자였다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 주변 모든 이들을 저주하는 사람도 있다. 행동양식은 다양하지만 이유는 한결같다. 미치지 않기 위해.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같이 먹었던 거, 같이 갔던 곳, 같이 갔던 식당 반찬까지 다 기억나는데....
그 사람 얼굴이.. 기억이 안 나...


체르노빌레츠는 하루하루 변해갔다. 아니 죽어갔다. 시신을 처리하러 온 장의사는 보드카를 달라고 했다.

"우리가 본 시체가 다양합니다만, 몸이 깨진 사람, 잘린 사람, 불에 탄 아이도 봤지만 이런 건 처음입니다."

죽고 나서도 묘지에 함께 묻히지 못했다. 죽은 사람이 죽은 사람을 두려워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도 체르노빌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알기만 했더라면 문을 다 잠그고 집 안에 있었을 텐데, 자물쇠를 열 개나 채웠을 텐데...


1986년부터 체르노빌에는 새로 태어난 여자애도, 남자애도 한 명도 없었다. 간혹 의사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몰래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많이 아팠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나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반(反) 원전 주의자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랑해, 오늘의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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