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기 위한 능력
기계와 인간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융합이 이루어진 시대.
인간은 연약한 신체를 강화하여 사이보그가 되거나, 뇌를 업로드하여 매트릭스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면 매끈한 기계의 몸을 빌어 리얼월드에 나오려 할 수도, 자신이 가장 완벽히 다룰 수 있는 세계인 사이버스페이스를 활보할 수도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 리얼월드를 살아가는 안드로이드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신형 넥서스-6 두뇌 장치를 장착한 안드로이드는
(거칠고, 실용적이며, 솔직 담백한 관점에서)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지만 열등한) 일부 인간들을 능가하여 진화한 셈이다. 싫든 좋든 이것은 사실이었다.
유능한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돕는다. 물론 인간과 대등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 등 인간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이다. 불필요한 일에서 해방된 인간들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져 갔고, 그러한 요구에 맞추어 레즌조합(안드로이드 제조회사)의 신제품의 성능은 점점 우수해졌다.
개선을 거듭한 안드로이드는 마침내 (지적인 면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생명을 가졌단 이유만으로 자신들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인간에게 진화한 안드로이드는 딴마음(?)을 품게 된다.
안드로이드도 꿈을 꾸나?
그건 분명해. 그들이 때때로 주인을 죽이고 이곳으로 도망치는 이유도
그것이니까, 더 나은 삶, 노예 신세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거주가 불가능한 식민 세계에 사는 것 대신에 말이야.
신형 안드로이드는 확실히 이전 버전과 달랐다. 그들에게는 살려는 열망이 있었다, 자신을 위협하는 주인을 해치는 한이 있더라도. 물론 처음부터 인간에게 위협을 가했던 건 아니었다. 최초의 시도는 '인간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마약의 일종인 '정신융합약물'을 사용해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얻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실패했고, 그 시도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인간 살해를 실행한 후 도주한 것이다. 높은 지능, 뛰어난 신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완벽한 그녀(그것?)에게 딱 하나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에게는 매우 이상하면서도 감동적인 뭔가가 있어요.
안드로이드라면 결코 하지 못하는 거죠.
1.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욕구 따위를 이해하는 능력.
2. 자연의 풍경이나 예술 작품 따위에 자신의 감정이나 정신을 불어넣거나, 대상으로부터 느낌을 직접 받아들여 대상과 자기가 서로 통한다고 느끼는 일.
최종 세계대전 이후 지구를 뒤덮은 방사능 낙진 때문에 인구 대부분은 식민 행성인 화성으로 이주했고,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생명이 소중하다. 반면 기술 수준이 매우 발달하여 기계가 생명체와 육안으론 구분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 나온 안드로이드는 인공 기억까지 심어서 스스로를 진짜 인간으로 확신할 정도다.
결국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분하는 방법은 감정이입 검사뿐이다.
감정이입 검사란 도덕적으로 충격적인 자극(질문)에 대해 이른바 '부끄러움'이나 '얼굴 붉힘'반응이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반응은 자발적으로 조절이 불가능하다. 인간과 달리 안드로이드의 공포나 혐오 같은 감정표현은 사실상 학습된 두뇌 작용으로, 자극과 반응 사이에 약간의 시간차가 발생한다. 따라서 1차적 자동 반응인 얼굴 영역의 모세관 팽창을 측정하여 둘 사이에 시간차가 발생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살려고 도망치거나 인간을 해치는 행위에서 보듯이 안드로이드도 감정이나 욕구가 있다. 단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욕구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로이 바티가 당신을 제거하거나 말거나, 나는 관심이 없어요.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내가 제거되느냐 마느냐거든요.
순수한 지적 역량이란 면에서는 제아무리 뛰어난 안드로이드라 하더라도, '감정이입'이란 감각만큼은 결코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심지어 정상 이하의 인간들조차도 어려움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쩌면 감정이입 능력은 오로지 초식동물에게만, 또는 (고기라는 식단에서 멀어질 수 있는) 잡식동물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감정이입 능력은 궁극적으로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그리고 성공한자와 패배한 자 사이의 경계를 흐려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거미가 기껏 고생해서 잡은 먹이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상대방의 열망을 인식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니 신형 안드로이드는 육식형 포식자에 해당하는 것이 분명하다.
감정이입 능력이 초지능 안드로이드도 갖지 못한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면,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그 능력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뉴스를 보게 되면, 그 능력이 없는 '안드로이드' 같이 자기 보호 본능에만 충실한 인간들을 목격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욕구 따위를 이해할 능력이 처음부터 없는 인간 종족.
우리는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
'사이코패스'
나는 두 개의 피조물과 함께 아래로 내려왔지
하나는 인간이고, 하나는 안드로이드였는데...
내 감정은 애초에 의도된 것과는 정반대였어. 내가 익숙하게 느끼던 것과는 정반대였지.
내가 의무적으로 느껴야 하는 것과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