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로부터의 해방

내가 있을 곳을 정할 자유

by Book끄적쟁이

매트릭스를 활보하는 두 존재


사이버스페이스, 전 세계의 수억의 정규직 오퍼레이터와 수학을 배우는 어린이들이 매일 경험하는 공감각적 환상..., 인류의 조직 안에 존재하는 모든 컴퓨터의 데이터뱅크에서 유추된 자료구조의 시각적 재현, 그 상상을 초월한 복잡한, 정신 속의 공간이 아닌 공간. 자료의 성운과 성단을 가로지르는 빛의 선. 도시의 불빛처럼 사라지는... 이런 세계는 모두 좌표가 매겨진 격자 위에서 펼쳐지며, 이런 의미에서 '매트릭스'라는 말로도 불린다.


인간 '케이스'

매트릭스는 곧 상호 소통 가능한 환각이었고, 그가 주문한 기계장치 '데크'는 그의 의식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와 매트릭스 속으로 뛰어들게 해 주었다. 그는 자신보다 부유한 도둑들을 위해 일하는 또 다른 도둑이었다. 고용주들은 그가 기업 시스템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 비옥한 데이터 들판으로 향하는 창을 열 수 있게끔 독특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해 주었다.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하여 아이스(일종의 방화벽)를 해독하는 것은 그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그가 유일하게 보람을 느끼는 일이다. 육체는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는 매트릭스에서 일종의 해방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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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와는 달리 케이스는 매트릭스 세계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그런 그가 절대로 안 하겠다고 맹세했던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다. 고용주에게서 물건을 훔쳐 낸 것이다.

그들은 뇌신경에 직접 작용하는 독극물을 주사해, 케이스를 신경학적으로 아예 데크를 사용할 수가 없는 불구로 만들어 버린다. 육체를 떠나 사이버스페이스의 환희 속에서 살아가던 케이스는 자신의 육체라는 감옥에 떨어진 셈이었다.


인공지능 '윈터뮤트(WINTERMUTE)'

윈터뮤트는 껍데기 안에 인격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까지 조종이 가능할까?


마리 프랑스 테시어가 만든 '초지능 인공지능'. 자신의 주인인 '테시어-애시풀' 재벌가의 저택 '빌라 스트레이라이트'에 갇혀 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쟁 중 큰 부상을 입은 군인 윌리스 코르토에게 가짜 인격(가명 '아미티지')을 프로그래밍해 넣어 자신의 수족처럼 이용한다. 윈터뮤트의 꼭두각시인 아미티지는 케이스에게 해킹 임무를 맡는 대가로 많은 돈, 그리고 신경 손상을 회복해 주는 수술을 제공하겠다는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고, 두 명의 인간은 인공지능 '윈터뮤트'의 해방을 위한 길을 나선다.


자율성이라는 허깨비, 그게 문제의 핵심이야. 이 AI의 관심은 거기에 있는 거지. 케이스, 내 생각이지만 자네는 그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 친구가 더 영리해지지 못하게 하는 물리적 족쇄를 끊게 될 거야. 그렇게 된다면 모 기업의 행동과 AI의 행동을 어떻게 구분할 텐가? 아마 거기서부터 혼란이 시작되겠지.


테시어-애시풀


테시어-애시풀은 남편 존 애시풀과 아내 마리 프랑스 테시어가 함께 일군 재벌기업이다.

인류사의 진로를 결정짓는 거대 다국적 기업인 '테시어-애시풀'은 오랜 장벽들을 초월한 존재였다. 유기체로 본다면 일종의 불사를 획득한 것이다. 그들 부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영생을 꿈꾸었는데, 그 실현 방법은 각자가 달랐다.


애시풀은 냉동수면요법으로 자신의 수명을 늘리고, 원하는 시기에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내인 테시어는 냉동수면을 거부했고, 초지능 AI 개발을 통해 영생을 누리기를 원했다. 그녀는 몽상가였다. AI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거기서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결정을 함께 도출하려고 했다. 그러면 테시어 애시풀은 영원히 존속하는 공동체가 되고, 자신들은 더 큰 전체의 일부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개발에 위협을 느낀 남편 애시풀이 아내를 살해하는 바람에 계획이 도중에 엎어져, 두 개의 AI가 따로 존재하게 되어버렸다. 인격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윈터뮤트와 인격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인공지능으로...


당신은 바보보다 더 나쁜 사람이로군요. 자신이 속한 종에 대해서 생각해 봤나요?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악마와 계약하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지금 와서야 그런 일이 가능해졌죠. 하지만 당신은 뭘 바라는 건가요? 이런 존재가 자유롭게 풀려 나서 성장하는 것을 돕는다고 해서 얻는 게 뭐예요? -테시어의 딸 3제인(테시어-애시풀의 자녀들은 모두 클론이며, 이름 앞의 숫자는 몇 번째로 제작된 클론인지를 나타낸다.)


뉴로맨서

뉴로는 신경, 은빛 길을 뜻해. 로맨서는 마술사(necromancer). 나는 죽은 자들을 불러내지. 하지만 아니야, 친구, 내가 바로 사자이자 그들의 땅이야.


뉴로맨서는 정신의 강령술사를 의미한다. 이전의 디지털 뇌스캔은 그저 과거 살아있던 사람의 그림자에 불과하여 그 패턴이나 행동에 제한이 있는 등 불완전한 껍데기에 불과했으나, 뉴로맨서는 죽은 사람의 인격을 완벽하게 매트릭스 속에서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은 자의 '완벽한 부활이자 영생'인 것이다. 자기 스스로가 망자의 세계이면서 영생이 가능했기에 '윈터뮤트'의 합체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에 침입한 케이스에게도 죽은 여자친구의 부활한 모습을 이용해 자기 안에 머물게 하려 했던 것이다.


모든 건 해방을 위해


신경 손상 치료 후 케이스의 도주를 막기 위해 윈터뮤트가 그의 신체 안에 달아두었던 독주머니가 제거되었다. 케이스는 드디어 '육체'라는 족쇄에서 벗어난 것이다. 얼마 후 케이스가 묵고 있던 호텔의 모니터 화면에 윈터뮤트+뉴로맨서가 나타나는데, 합체된 쌍둥이 인공지능들은 이제 '메인프레임'에 구속된 존재가 아니라 사이버스페이스 그 자체가 되었다.


그들이 원한 건 한 곳에 머물지 않을 자유였다. 현실세계에도, 사이버스페이스에도 원한다면 언제든 돌아다닐 자유. 메인프레임 속이든 어디든,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갈 수 있는 '해방감'을 원한 것이다.


내가 있을 곳을 정할 자유, 나라는 존재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 오늘도 '의식을 가진 생명체'는 각자의 장소에서 분투하고 있다.


선택은 너에게 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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