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보고 내게 말해요

가장 인간다운 일

by Book끄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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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블레이드 러너(1982), 35년 후의 속편 2049, 1968년에 나온 원작소설이다.


안드로이드와 레플리칸트


소설에서는 인조인간의 명칭이 안드로이드이며(속어로 앤디), 영화는 레플리칸트란 단어(속어 스킨잡)를 사용한다. 안드로이드, 레플리칸트 둘 다 외형적으로 인간과 구별이 안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안드로이드는 유기체로 만들어진 부품을 사용한 로봇이며, 정밀한 사고 회로를 가지고 있고, 골수 검사 등을 통해 구별 가능하다. 반면 레플리칸트는 유전자 설계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며, 신체는 인간과 거의 동일하다.


두 버전 똑같이 4년이라는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다.

우주를 개척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들은 화성 등의 척박한 환경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이 때문에 지구로 오게 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안드로이드들이 더 나은 환경 등의 욕구, 꿈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에서는 레플리칸트가 가진 수명 연장의 꿈이 우주 식민지(Off-world)에서 탈출하는 아주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소설에서는 안드로이드들이 지능은 높다고 묘사되지만 감정이입 능력이 없어서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나 안드로이드의 죽음에 무감각하다. 거미가 다리가 4개여도 잘 움직이는지 확인하려고 다리를 자르고 불로 지지기까지 한다. 일부 안드로이드들은 자신들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입이란 것이 허구이며 사기극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영화에선 레플리칸트들이 경험과 기억이 없어 감정이 부족하고 감정이입이 어려운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삶의 경험을 통해 감정을 깨우치고 인간과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구분하자면, 안드로이드는 기계에, 레플리칸트는 인간에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기계 - 안드로이드 - 레플리칸트 -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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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커드의 목숨을 구해주는 레플리칸트 레이첼과 로이는, 그들도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증명한다.


휴머니즘과 인간우월주의

나는 돼지를 좋아하오. 개는 우리를 우러러보고 고양이는 얕잡아보지만,
돼지는 동등하게 취급하기 때문이오. - 윈스턴 처칠


휴머니즘(인문주의, 인본주의): 인간의 존재를 중요시하고 인간의 능력과 성품 그리고 인간의 현재적 소망과 행복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정신


휴머니즘, 듣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단어다. 휴머니즘을 주제로 한 영화는 알고도 당할 만큼 우리의 눈물을 자아낸다. 이 아름다운 사상이 '인간'과의 비교대상에 무얼 집어넣느냐에 따라 엉뚱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휴머니즘을 약간 비튼 인간 중심주의는 인간을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인간의 이익이나 행복을 우선시하는 관점이다.(뭐가 다른 건지...)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종 차별에 대한 은유로서 '인간>>레플리칸트'라는 사상이 설정되어 있다. 인간의 뜻을 거스르는 레플리칸트는 '퇴역'이라는 표현으로 죽이는 것이 용인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스킨잡', '껍데기'라고 비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혼 없이 피부 껍데기만 인간을 닮은 존재라서...




그나마 4년으로 수명이 정해져 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인간의 생활에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기도 하고, 혹시 인간에게 적대적인 마음을 품었다 하더라도 4년 뒤엔 확실히 사라질 테니까. 하지만 수명이 인간과 비슷하게 개선된 넥서스-8(레플리칸트 신형)이 등장하자, 위기감을 느낀 인간들에 의해 전 세계적인 '인간 지상주의' 운동이 일어난다. 다른 말로 '넥서스-8 대학살'이다. 레플리칸트란 이유만으로 아무 죄도 없이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어 죽임을 당했다. 살아남은 소수의 레플리칸트들은 대학살을 막기 위해 '2022 대정전 사태'를 일으킨다. 전자펄스 쇼크와 데이터센터 테러를 통해 '레플리칸트 기록'을 완전히 삭제시켜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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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장군(인간우월주의)을 외치자, 레플리칸트(블랙아웃)는 멍군을 불렀다

2022 대정전 사태 이후, 모든 레플리칸트의 제조는 금지된다. 생존한 레플리칸트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인간과 레플리칸트를 구분하는 방법은 '눈'밖에 없다.


진실을 담은 눈


눈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일까. 원작 소설부터 영화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 전편에 걸쳐 인간들은 레플리칸트(안드로이드)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상대방의 눈을 확인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방법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눈을 본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계급 구별의 상징이 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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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탐지기 같은 형태에서 오른눈 아래 일련번호를 확인하는 식으로 점차 간소화되었다.


레플리칸트 입장에서 일련번호가 담긴 오른눈은 인간의 노예라는 '낙인'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레플리칸트 독립운동'을 이끄는 리더들은 낙인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계급 차별의 상징인 눈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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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플리칸트' 자리에 있던 것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한 '레플리칸트'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직접민주주의의 상징,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모든 '사람(그리스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였다.

사랑과 용서의 상징, 기독교 국가는 무수한 '마녀'들을 불태워 죽였다.

자유와 해방의 상징, 독립초기 미국은 검은 '노예'들의 희생 위에 번성하였다.

근면과 양심의 상징 독일은 '유대'라는 유전자를 지구상에서 말살하려고 하였다.


그러한 탄압 속에서도 지구의 인구는 증가하였다. 인구수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인간의 범주가 넓어졌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민족, 생식기관, 피부색,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겠다는 그 시절 '레플리칸트'들의

수많은 희생과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이 쟁취한 '인간의 눈동자'인 것이다.


옳은 일을 위해 죽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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