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자신을 닮은 것을 만드는가
사람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것을 얻어 이득 볼 때의 행복보다 자신의 것을 잃게 되어 생기는 스트레스가 약 2.5배 더 크다고 한다.
이러한 '손실회피 성향'은 대인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유기공포)은 타인이 자신을 싫어하고 있거나 홀로 남겨졌다거나 불안정하거나 버림받은 듯한 느낌을 갖는 사람의 주관적 감정 상태를 말하는데, 이러한 유기공포를 겪는 사람은 상실한 느낌을 받으며, '생명의 기운'이 갑자기 혹은 서서히 사라지다 단절되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때의 행복보다 '영원히 내 것인 줄 알았던 이'로부터 버림받아 생기는 스트레스가 압도적으로 더 큰 것이다.
현재 관계 속에서 유기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원인을 과거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어렸을 때, 부모나 양육자의 죽음 혹은 방치를 경험
부모의 무시를 경험
또래들에게 거절
연인이나 배우자의 장기 투병을 경험
연인이 갑자기 떠나거나 신뢰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행동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버림받음'에 압도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눈치가 보이면 피해버리는 '회피성 성격'을 가지게 된다. 비판이나 거절에 매우 민감해지며, 거부당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이는 대인관계를 잘 맺지 않으려고 한다. '을'로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 내가 '갑'일 수 있는 관계를 찾아 헤맨다. 애완동물, 인형, 나보다 약한 존재. 나를 버리지 않을, 만약 버린다면 그 '선택권'을 내가 가질 수 있도록...
'회피 성향'을 가진 사람 본인은 완강히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들에게 애완동물이나 인형이란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의 '대용품'일 뿐이다. 이왕 그렇다면, 인간의 모습과 감정을 지닌 '대용품'이 훨씬 낫지 않을까? 공각기동대 속 세상은 그것이 가능해진 곳이다. 로봇이지만 인간과 매우 유사한 애완용 '가이노이드(소녀형 로봇)'가 버림받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절대 배신하는 일 없이.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인간형 로봇, 즉 인형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사람이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는 오히려 깊어지는 것이다. '불쾌한 골짜기'란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오히려 불쾌함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어쩌면 이건 인간이 가진 근원적 공포를 건드려서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형을 역겨워하는 이유는 인형이 인간모습을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야
즉 인간 자신과 똑같기 때문이라고
인간이 인형처럼 간단한 장치와 물질로 환원되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지
즉 인간이라는 게 실은 허상이 아닌가 하는 공포심이야
생명의 비밀을 밝혀내려 했던 과학도 이 공포심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지
자연현상이 계산가능한 것이라는 신념은 인간도 기계부품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지
결국 기분 나쁜 공포를 안겨주는 '인형'에게서도 위안을 얻을 수 없는 '회피형 인간'은 그 '인형'마저도 버리게 된다. 하지만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되는 데, 위에서 말했듯이 그 '인형'이 인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버림받기 싫어하는 성향마저도.
그댄 먼 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날 볼 수 있을 텐데...
어느 날, 가이노이드(소녀형 로봇)가 갑자기 이상을 일으키며, 인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모두 주인 살해 후 전뇌(전자두뇌)는 초기화시킨 채 자폭해 버렸다. 스스로의 의지로.
로봇 윤리코드 제3항, '인간을 해치지 않으며 자기 존재를 유지한다'를 위반한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공각기동대 버트와 토구사의 조사 결과, 이 로봇을 만들어낸 제조업체에서 '고스트더빙' 기술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스트더빙은 인형(로봇)에 혼(고스트)을 넣는 방법인데, 대량복사가 가능하지만 오리지널이 죽어버리기 때문에 금지된 기술이다. 이때 오리지널로 사용된 것은 동남아에서 인신매매로 팔려온 '어린애들'이었다. 결국 인간과 매우 유사한 인형의 '이상 행위'는 버림받느니 차라리 버리고(죽이고), 다시는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는(자폭) 인형 속 혼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인간과 인형의 만남과 헤어짐에 '토이스토리'와 같은 훈훈함만 있는 건 아니다. 토이스토리의 SF 스릴러 버전인 '이노센스' 같은 섬뜩함도 존재한다. 버림받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존재를 걸고 싸울 만큼 두려운 법이니까.
로봇들은 그저 자신들이 쓰고 버려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버림받은 곰(표지사진) 출처: 티스토리 ig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