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언어분투기 1. 플루언트, 몇 년째 영어 공부 1부
나의 언어분투기 1. 플루언트, 넌 대체 몇 년째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거니? 1부
(문과 성향으로 여러 언어를 넓고 얕게 흥미가 동하는 대로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시리즈 프롤로그]
타고난 문돌이 성향 탓일까.
어릴 때부터 숫자보다는 글자에 친근감을 느꼈다. 특히 내러티브, 스토리 등 의미가 부여된 언어에 강하게 끌려, 영어소설, 영화, 일본만화, 게임 등에 푹 빠져 지냈다. 좋아하다 보니 그 언어들을 파고들게 되었고 '원어'로 접했을 때만 느낄 수 있 '온전한 감동'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이 시리즈는 '오리지널'이 주는 생생함을 느끼기 위해 언어를 익혀가며 분투했던 흔적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넌 대체 몇 년째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거니?
저자의 물음에 대한 내 대답은 30년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서른 해동안 영어란 놈과 씨름하고 있다. 웬만한 영어원서는 70~80% 정도 이해하고(고전문학작품 제외. 그건 너무 어렵더라...), 영어자막을 켜고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이며, 어설픈 회화와 작문이 가능한 수준이다. 나름 괜찮은 수준 같다가도, 30년이란 역사적 배경(?)을 돌이켜 보면 무척 불만족스럽고 부끄럽기도 하다.
미국 어린이도 제대로 된 문장으로 말하려면
4-5년은 영어에 노출되어야 한답니다. 따라서 '10년을 해도 제자리걸음인
내 영어'라는 말은 보상 심리가 깔린 착각인 셈입니다.
아프다. 저자의 말이 뼈를 때린다.
고백하겠다. 학창 시절 고3 때 바짝 공부한 것 빼고는 별로 하지 않았다. 30 - 5년 = 25년.
대학시절부터는 그 당시 핫했던 영어교재를 이용해 공부를 해왔다. 기억나는 것만 해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시원스쿨영어', '소리 영어', '영어천재가 된 홍대리', '해커스 토익' 등이다. 그런데도 아직 '편안함'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왜 그럴까?
넌 왜 맨날 영어공부는 안 하고, 영어 잘하는 방법에 대한 책만 읽고 있냐?
늘 '영어 잘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붙들고 있는 나에게 형이 해주던 말이다. 문법도 해보고, 단어암기도 해보고, 한국인에게 어려운 연음 듣기, 주어+동사로 쉬운 영어 무조건 내뱉어 보기 등 안 해본 게 없었다. 하지만 나의 영어는 '정체'되어 있었다. 무언가 보이지 않은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김재우 선생님에 따르면 '중급 단계의 정체기'에 빠진 것이다.
중급 초입 단계에 있는 학습자를 가장 괴롭히는 점은 머리로 익힌 표현이 실제 상황에서 내 입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 즉 '아는 영어'와 '구사할 수 있는 영어'의 격차가 크게 다가오는 지점입니다.
'다채로운 표현 방식'과 '외웠는데 입에서 안 나온다', 이 두 가지가 영어를 어렵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저자의 말처럼 내 머릿속에는 '멋진 표현'이 가득 차 있다. 영어 원서를 많이 읽어서 알게 된 표현들이다. 그러나 입으로 내뱉을 수 있는 건 '초딩스러운 표현'뿐이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정도도 안된다. 브로큰 잉글리시도 많으니까. 40을 넘긴 나이에 영어 공부가 어려운 건 시간이 없고 끈기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될지 막막하다는 게 가장 크다. 그래서 묘수를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펼쳐든 '넌 대체 몇 년째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거니'. 이 책은 친철하게도 나의 상태를 진단하고 처방전을 제시해 주었다.
영어가 잘 늘지 않는 이유는 학습의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말부터 익히고 글을 읽어야 하는데 이 순서가 바뀌어 영어 완성으로 가는 길이 꼬이게 된 것이다. 모국어를 배우듯 외국어 역시 상대적으로 '쉬운 영어(구어체 영어)'를 먼저 습득한 후에 쉬운 영어가 입에서 편안하게 나올 때쯤 '어려운 영어(문어체 영어)'를 학습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였던 것이다.
진단: 현재 나의 영어는 소리와 구어체 표현에 대한 노출이 부족한 상태(영어를 너무 책으로만 배웠다...)
'듣기'는 크게 소리의 영역과 이해의 영역으로 나뉜다고 한다. 해당 문장을 자막을 켜고 들어도 모르겠는 경우는 이해의 영역 문제이지만, 미드나 실제 원어민의 대화가 잘 안 들리는 경우는 소리와 구어체 표현에 대한 노출 부족이 원인이다. 다시 말해 소리나 말할 때만 쓰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단어를 몰라서 안들리는 건 아닌 것이다.
유용한 사이트
원하는 표현을 검색창에 넣으면 해당 표현이 들어간 미드나 애니메이션이 보이며, 영상을 클릭하면 관련 표현이 들어간 수많은 구어 영어 문장을 볼 수 있다. 강력 추천하는 사이트 중 하나이다.
'단어는 쉽게, 문장은 원어민스럽게'가 김재우표 영어 스피킹의 모토이다.
문장은 브로큰 잉글리시인데, 단어만 튀는 영어 문장을 끊임없이 내뱉기 때문에 많은 원어민이 한국식 영어가 대학 강연이나 테드 스피치 같다고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계속 강조하지만 상황과 자리에 맞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것이 핵심이다.
구어체 영어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상세하게 이야기하면 오히려 더 어색하게 들린답니다.
저자를 비롯해 중급 정체기를 무사히 탈출한 경험자들의 간증에 따르면,
구어체 영어에 노출을 늘리고 시간을 많이 투자했더니 소위 말하는 '고급 영어(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영어)'까지 동시에 잘하게 되었다고 한다. 구어체 표현을 익히기 위해 사용한 교재는 미국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저학년이 현지에서 즐겨 읽는 동화이다.(+좀 쉬운 미드)
추천 도서
Jeff Kinney, Diary of a Wimpy Kid series (Abrams Books, 2007)
구어 영어를 익힐 수 있는 최고의 도서이다. 자연스러운 영어 말하기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하루 한 단락씩 외우는 것을 추천한다.
미국 아이들이 읽는 동화를 읽으면 언어의 생생함, 감정과 묘사적인 표현에 대한 공감,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에 몰입되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문맥 없이 어떤 표현을 학습하거나 '암기'하는 느낌보다는 스토리 속에서 표현과 문장을 '체화'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어휘는 어휘대로 문장은 문장대로 선명하게 뇌리에 박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뉴스나 기사문을 학습할 때와는 다르게.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 저처럼 '만성 영어 중급 정체기'를 겪고 있다면,
'김재우표 처방전'을 권한다.(2부에서 계속)
구체적인 처방 Tip 9가지
1. 실제 내뱉는 나의 영어와 정면으로 맞닥뜨려 본다
실전 상황에 많이 노출될 때만 무엇을 집중적으로 채워야 하는지 현실적인 판단이 서게 된다.
2. 두루두루 쓸 수 있는 범용성 높은 어휘에 집중하자
이미 외워서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표현을 좀 더 다양한 상황에서 접해야 할 시점이다. 새로운 표현이 아니라.
3. 표현은 이야기 속에서 익혀야 한다
해당 표현이 등장하는 장면의 이미지와 잔상이 남을 때 이 표현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4.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되어야 한다.
감정이 격해지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영어 표현을 끄집어 내게 된다.
5.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말자
영어도 참으면 늘지 않는다. 일단 첫 단어부터 내뱉어 보자.
6. 표현의 구성과 온전한 문장의 완성에 집중하라
단편적 표현의 조각이 아닌 온전한 하나의 문장을 만들 수 있어야 자유로운 영어 말하기를 할 수 있다.
7. 눈으로 볼 때 쉬운 것에 집중하자
해석이 된다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원어민이 내뱉는 문장들을 보고 들으면서, 똑같이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라.
8. 단어 하나하나는 쉬운데 문장으로 보면 어려운 것에 집중하자
'쉬워 보이지만 내 입에서는 안 나오는 영어 표현'에 선택과 집중하자. 그게 원어민스러운 영어다.
9. 같은 표현 및 문형을 다른 상황에서 여러 번 마주쳐야 한다.
어떤 단어나 표현이 완전한 내 것이 되어 내 입에서 나오려면 동일한 표현을 적어도 네다섯 개의 다른 이야기나 상황 속에서 우연히 듣거나 마주쳐야 한다. 단어장에 나온 줄줄이 예문 속에서는 아무리 외워도 나중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