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제1장 수태
무(0)에서 만물이 창조되는 데에는
하나(1)로 충분하다.
-라이프니츠
내가 처음부터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려고 작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덜컥 엄마의 자궁에 착상 되었을 때, 9·11테러 사건이 터졌다.
그날, 엄마는 예약한 병원에 들려 피검사를 받고 있었다. 체질적으로 자기 몸에 대해서 민감한 엄마는 몸이 나른해지고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몰려오고 자꾸 새콤한 것이 먹고 싶어지자, 아차, 싶어서 임신키트로 테스트를 했다. 그것이 양성으로 나타나자 확실한 진단을 위해 병원을 찾은 거였다. 임신 3주라는 진단이 나왔다.
‘배란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이발. 그렇게 조심을 했는데도…’
나의 엄마 왕수지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나는 기겁을 하고 놀랐다. 내가 그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니… 그렇다. 엄마는 나를 낳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는 아직 스물세 살이었고, 해야 할 공부도, 하고 싶은 일도, 놀고 싶은 일도 많았다. 더구나 그녀는 지금 부모님과 절교를 하고 영국의 런던에서 혼자 고군분투 중이 아닌가.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그럴 이유는 눈곱만치도 없었다. 디자인 스쿨을 마치고 취직을 해야 하는데 남산만한 배를 하고 공부하러 다닐 수도, 아이를 낳고 취직을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초음파 검사를 해보면 어떨까요?”
수지는 좀더 확실한 검사를 하고 싶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아직 태아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초음파검사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한 달 후에 다시 오시죠.”
수지는 나의 수태로 인해서 낙담을 하고 얼굴빛이 허옇게 되어 진료실을 나왔다.
그때 병원 대기실의 대형 TV화면에서 액션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영상이 뿌려졌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쌍둥이 빌딩을 비행기가 들이받자 빌딩이 무너져 내렸고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TV에서 방영되는 그 광경을 보고 수지는 화들짝 놀랐다.
“어머나. 저걸 어째. 미국이 무너지고 있어.”
주변에서 들리는 그 목소리는 무척 불길했고, 수지는 덜컥 겁이 나서 주저앉았다. 그 사건으로 비행기에 탄 사람은 모두 죽었고, 빌딩에 있던 사람들도 수천 명이나 죽었다. 이곳은 미국과는 멀리 떨어진 영국 런던이었으나 사람들은 대서양 건너에서 벌어진 사건을 마치 런던에서 벌어진 일인 양 호들갑을 떨고 있는 거였다.
엄마의 겁먹은 심장 박동소리를 듣고 나는 본능적으로 세상이 무척이나 살벌하고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수지는 TV에서 방영되는 아비규환의 장면을 보면서 거듭 비명을 질렀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물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 무렵 나의 생명의 씨앗을 뿌린 남자가 사라진 때문이었다. 나를 만들어 놓은 아빠라는 인간은 말싸움 끝에 주먹을 휘두르고 나간 후, 사흘째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수지는 시퍼렇게 멍이든 얼굴로 그가 있을만한 곳을 모조리 뒤지고 다녔으나 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앳된 아가씨에 지나지 않는 수지는 탈진한 상태로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면서 중얼거렸다.
‘이 새끼 만나기만 하면 죽여 버릴 거야….’
그녀는 남자에게 순정을 바쳤는데 그 자식은 떠나버렸다. 그는 배신자다. 그는 여자를 버렸고 나를 버렸다. 물론 그는 나의 수태를 알 턱이 없었지만 말이다.
* * *
그날 밤 수지는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들었다. 조그만 MP3플레이어에 스피커를 달아 놓은 음향 시스템인데 사운드의 음감이 무척 부드럽고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이었다. 바흐 음악에 관심 있는 젊은 여자는 드물다. 그녀가 듣고 있는 곡은 <브란덴부르크 변주곡>.
바흐의 음악은 외로울 때 위로가 되는 장엄함이 있다. 그러나 지금 수지는 음악감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습관적으로 틀었을 뿐 그날만은 바흐의 음악도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수지가 음악을 들을 때면 손에는 대게 책이 들려져 있었는데 나의 수태를 알게 된 그날 저녁, 그녀의 손에는 프랑수와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 들려져 있었다. 그녀는 사강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녀는 사강의 모든 작품을 읽었다. 어찌 보면 수지의 성격이나 행동은 사강이나 그녀의 작품에 나오는 여주인공을 많이 닮아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 중에 사강의 인생 자체를 흉내 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수지와 사강의 삶은 판이하게 달랐다. 수지는 좌충우돌의 지극히 불편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녀가 작가를 꿈꾼다거나 마약을 손에 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수지는 사강의 감각적인 문장과 자유분방한 취향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서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이 흐르고 있다. 밖은 어두웠으나 실내에는 따뜻하고 목가적인 선율이 잔잔하게 물결친다.
아침이슬이 내려앉은 풀잎, 가볍게 흔들리는 종려나무, 창문으로부터 들어오는 햇살 한 조각, 강변을 거니는 연인……
그런 풍경들이 수지의 뇌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피아노는 슬픔을 머금은 채 애잔한 선율을 연주하고 있었다. 수지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한때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피아니스트가 되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로 음악적 재주와 소양도 꽤 있었으나 그것은 철지난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녀는 자기 생활 너머의 어떤 것도 누릴 여유는 없었다.
나의 생명의 씨앗을 뿌린 그 남자는 탈북자 출신 난민이었고 그의 이름은 김현도. 그는 김일성대학 출신으로 북한의 엘리트 집단에 속한 사람이었는데 암울한 북한의 실정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탈출을 시도했고 지금은 영국에 난민 신청 중에 있었다.
수지와 그 남자가 처음 만난 곳은 디자인 스쿨에서였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우리말이 통하는 동포여서 두 사람은 무척 반가웠다. 또 경향이야 달랐지만 남과 북을 탈출해온 공통점도 있어서 야릇한 동류의식을 갖고 있었다. 현도는 건축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컴퓨터그래픽에 탁월한 실력을 갖고 있어서, 수지는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수지는 세 살 연상인 현도를 오빠라고 부르며 혈육처럼 느끼게 되었고, 친밀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녀는 부글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음악으로 달래면서 그 남자를 기다렸다. 그녀가 창문을 열고 있는 것도 그 남자가 돌아오고 있다면 그 기미를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차리기 위한 간절함 때문이었다. 수지는 저녁 내내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초조해하며 좁은 집 안을 왔다 갔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수지는 지금이라도 남자가 돌아오면 임신 사실을 알리고 미래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 인간이 오늘도 안 들어오는구나. 갈 곳 없는 인간을 거두어 주었더니 정말로 내 사랑을 배신하는 거야?’
정말 수지는 현도를 친오빠처럼 살갑게 거두었다. 외동딸로 자란 그녀가 머나먼 타국 땅에서 만난 현도를 거두어 섬긴 것은 사랑보다는 그 남자가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다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때문이기도 했다.
현도는 어찌어찌해서 디자인 학교에 등록은 했으나 거의 무일푼의 처지라서 노숙자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불쌍해서 내 집을 빌려줄게. 딴 생각 품으면 죽는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동거는 사랑으로 이어졌다. 젊은 남녀 간에 플라토닉 러브가 어떻게 가능한가? 두 사람 사이에는 그것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남녀 간의 우정을 견지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으나 수지는 원칙을 중시하는 성격이었고 현도는 참을성이 강하고 경계를 지킬 줄아는 성격이었다.
문제는 술이었다. 수지는 술을 곧잘 마셨는데 발동이 걸리면 계속 마시려는 경향이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 기분 좋은 날, 남북통일에 대한 거대 담론을 나누다가 일 년 이상 잘 지켜지던 선을 넘어서고 말았고, 결국 ‘나’라는 존재를 잉태하기에 이른다.
수지의 입장에서는 나를 낳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한 생명이 자기 안에 장착이 된지라 그녀는 공동책임자의 생각을 듣고 싶은 데 그 작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거였다.
여자는 요즘 남자를 잔뜩 의심하고 있었다. 의심이 아니라 그 남자가 백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틀 만에 집에 돌아온 남자에게 해명을 요구했으나 그는 대뜸 주먹부터 날리는 거였다. 아버지에게도 맞아본 적이 없는 수지는 너무 놀라서 기절을 할 뻔했다.
“니가 뭔데 사람을 때려? 잘못한 게 없으면 아니라고 하면 되잖아!”
또 주먹이 날아왔고 남자는 바람처럼 집을 나가버렸다. 결혼한 사이도 아니었고 결혼을 약속한 바도 없었으나 남자는 씨앗을 뿌렸다. 그런데 그는 지금 다른 여자에게 미쳐 있는 거였다.
그 여자의 이름은 제시카 매클로드.
그녀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금발이었으나, 아름답다기보다는 귀여운 느낌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몸매가 아담했고 연한 빛의 푸른 눈동자는 야릇한 생기로 반짝였다. 천상의 존재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가녀린 젊은 여자에게 그 동양인 남자는 매혹당하고 있었던 거였다.
‘혼자서 아이 엄마가 될 수는 없어…’
수지는 머나 먼 타국에서 앞이 내다보이지 않아서 혼자 울고 있었다. 당찬 그녀였지만 무서운 것이다. 쫓기다 잡힌 토끼처럼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마음속에서 아주 악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지울 거야. 달리 방법이 없잖아…’
-엄마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또다시 깜짝 놀란 나는 나의 삶이 시작되기도 전에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버렸다. 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사태를 어떻게 막아야 하나. 나는 단발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우선 태어나야 해! 태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야!
술을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태중에 있는 나를 생각해서인지 그날은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침대에 몸을 던지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뒤 북받치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영국 생활을 시작한 이후, 그녀는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현도에게 맞았을 때도 울지는 않았다. 지금도 울어서는 안 된다.
수지는 병원에서 넋이 빠진 채 울었던 일은 기억조차 못했다.
밤늦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 창문에 빗줄기가 휘몰아쳤으나 수지는 게의치 않았다. 그날 밤, 나의 엄마 왕수지가 기다리는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