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지대

제4장 런던생활

by 이채윤


제4장

런던생활

두려움을 알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진실로 용기 있는 자다.

-아서 웰링턴


런던에 도착한 수지는 그 도시가 낯설기는 했으나 막막하지는 않았다. 우선 그녀는 영어가 통했다. 어머니의 극성 덕분에 어려서부터 네이티브 스피커로부터 영어를 집중적으로 배운 덕분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외국 어느 나라에 나가서도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뛰어난 영어 실력은 영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수지는 부모에 대해서 그다지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으나 그 점만은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외에는 완전백지 상태였다. 물건을 사는 법도, 살림을 사는 법도 몰랐고 대인관계도 서툴기 그지없었다. 인천공항에서 환전을 한 돈이 떨어지면 패물을 팔아서 학교도 다니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 벌써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혈혈단신 떠나온 탓도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 디자인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전문적인 디자인 책을 들여다본 적도 디자인이론을 접한 적도 없었다는 점이다. 비행기를 타고 5시간쯤 날았을 때 그녀의 뇌리에 갑자기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 디자인 공부를 하는 거야.’

그때 비로소 그녀는 자신이 왜 영국행 비행기를 탔는지 납득하고 있었다.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디자인과 영국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수지는 손재주가 많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남다른 심미안이 있다는 소리도 더러 들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디자인 잡지 한 번 들여다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자신의 가슴 속에서 “디자인~디자인~”하면서 누가 울어대는 거였다. 그녀는 ‘그래 이게 내 운명이야!’라고 생각했다. 히드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렸을 때는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런던을 찾은 가슴 벅찬 유학생이 되어 있었다.

수지가 호텔방에 머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디자인 스쿨에 입학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는 거였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하는 것이 여의치가 않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탈출을 감행한 탓에 입학서류를 준비할 방법이 난감했다. 우선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서류가 필요했다.

수지는 궁리 끝에 중학교 때 남자 친구였던 강호태에게 연락했다.

‘이 아이야말로 내 부모와 연락이 닿지 않는 적임자닷!’

그 생각을 하면서 수지는 피식 웃었다. 지금쯤 서울에 있는 내 부모는 이혼 수속을 하고 재산 싸움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을 텐데…

“호태야, 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서류를 떼서 이 주소로 꼭 보내야 한다.”

수지는 부탁이 아닌 명령조로 말했다. 원래 중학교 때 사귈 때도 그랬고 헤어질 때도 자기 마음대로 헤어진 그녀였다.

“수지야, 너네 집 망했다며?”

녀석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그렇게 물었다.

“딴 소리 말고 시키는 일이나 잘 해. 너 아무에게도 알리면 안 된다. 죽는 수가 있어.”

일주일 쯤 지나자 호태가 보낸 서류가 수지가 묵고 있는 호텔로 도착했다.

수지는 유학 수속에 필요한 서류를 접수하고 우선 관광비자를 학생비자로 바꾸었다. 그녀는 런던 예술대학교 파운데이션(예비과정)에 입학을 했다. 1년간 파운데이션 과정을 거쳐서 3년에 걸친 학사과정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고난의 행군은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지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거나 무엇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그다지 고민한 적이 없는 수지였다. 어떻게 밥이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일체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온 몸과 온 정신을 다해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탈출해서 자유를 얻기는 했으나 자유의 대가는 고독과의 싸움이었으며 고난의 행군이었다. 일찍 일어나라는 사람도, 밥 먹으라는 사람도, 공부하라는 사람도 하나 없는 이 세상에 완전히 홀로 내동댕이쳐진 고독이자 자유였다. 수지는 그것을 즐겨야 한다고 자위하고는 있었으나 생경스럽고 낯설기만 환경에 적응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기숙사 방을 얻고 등록금을 내자 돈이 바닥을 드러냈다. 수지는 영국으로 올 때 가져온 어머니의 패물 중에서 시계 하나를 팔았다.

다행이 명품 시계라서 몇 달치 생활비는 너끈했다.

처음 학교에 간 날 그녀는 너무도 막막했다. 디자인 서적을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디자인 전문용어가 너무도 생소했던 것이다. 취미로 들여다보던 디자인 세계와 직업을 향한 디자인 공부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었다. 그녀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과목으로 선택했는데 원단이며 의류부자재, 악세서리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패션에 대한 정보는 여성잡지 정도를 들썩여 본 것이거나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명품샵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고르는 일 정도였다. 그것도 어머니가 골라주는 방향에 따라 만들어진 취향이었을 뿐인.

그러나 아무리 막막해도 수지는 기가 꺾이거나 좌절을 하지는 않았다. 히드로 공항에 내려서 영국 땅을 밟는 순간 수지는 당당한 유학생이었고 해낼 수 있으리란 각오를 다진 터였다. 수지는 자신을 달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잘 하거나 좋아하는 일에 달란트가 있다’


‘그 달란트를 잘 챙기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어디선가 주워 들었거나 자기계발서에서나 나옴직한 경구가 그녀의 좌우명이었다.

그녀는 생각이나 메시지를 전달할 때 말이나 글자보다 이미지를 만들길 좋아했다.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무슨 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하거나 두각을 나타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끄적거리기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자기 생각을 글보다는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편할 뿐이었다. 수지는 그러한 자신의 취향을 자신의 재능이라 여기고 그 달란트를 잘 챙겨보기로 독하게 마음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국의 교육방식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한국교육은 주입식인 반면 영국은 토론식 교육이어서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어릴 적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다닐 때 토론식 학원을 다녔던 덕분에 적응하기가 쉬웠다.

수지는 런던의 날씨도 마음에 들었다. 런던을 처음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에 질겁하는 편이지만, 수지는 찌푸린 회색 하늘과 싸늘한 공기가 썩 마음에 들었다. 비를 좋아하는 그녀는 런던의 어둡고 칙칙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으스스하게 좋았다. 런던은 여름이라도 쌀쌀하고 춥고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린다. 아침에는 해가 쨍쨍 뜨다가도 집 밖을 나설 때면 비가 오기도 한다. 그런 날은 대게 이슬비가 내려서 그녀는 그냥 비를 맞고 돌아다닌다. 런던은 1년의 반 정도가 그런 날씨다.

누군가는 우울하다고 하지만 수지는 우울하다기보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무거운 공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가끔씩 청명한 햇살이 비쳐들어 기분을 전환시켜주니 수지는 날씨만큼은 마음에 쏙 들었다.

기숙사 생활도 즐거운 편이었다.

기숙사는 5명이 함께 주방을 공유하는 거였는데, 서로 돌아가면서 각국 요리를 해먹는 재미에 빠졌다. 태국.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룸메이트들 덕분이었다.

마트에서 직접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는 것이 돈도 절약이 되고 친구들과 우정도 생겨서 좋았다. 친구들은 모두 성격이 좋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들이 있었다.

수지는 학과 공부를 무척 즐겼다.

런던은 개방적 문화를 가진 사회다. 런던은 열정으로 똘똘 뭉쳐진 젊은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곳이다. 다양성이 많이 인정되고 다양한 인종의 함께 사는 작은 지구촌이라고 할 수 있다. 수지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공부에 매달리는 지독함을 보였다.

그녀는 코피를 흘릴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한국에서 그 정도 공부를 했으면 명문대학을 가고도 남았으리라.

하지만 자신의 색채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디자인 분야가 거의 그렇지만 패션 디자인은 분야가 무척 다양했다. 먼저 의복과 색채, 인체와 의복에 대해서 개념을 잡아야 했고 패션디자인발상, 패션일러스트레이션, 패션컬러트레이닝, 패션CAD의 기초를 배워야 했으며 의복제작을 위한 의류봉제, 패션소재개발, 패션브랜드분석을 해야 했다. 졸업 후 진로방향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했는데 패션디자이너가 가야할 길도 신사복, 숙녀복, 캐쥬얼, 아동복, 유니폼, 아웃도어웨어, 이너웨어, 액세서리, 공연의상, 텍스타일디자이너, 패션스타일리스트 등등 무척이나 많았다.

수지는 수업 시간에 눈물이 찔끔 날정도로 자신의 재능과 색채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생은 무엇인가?’, ‘나의 재능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의 색깔은 무엇인가?’ 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가장 힘든 것은 기초가 부실한 탓에 나타나는 스스로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자신보다 잘하는 친구를 보면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친구들은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어서 가끔씩 학생이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왠지 찝찝했다. 자신의 재능이 저 친구들보다 못하다는 의구심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수지의 그런 의구심을 덜어주고 그녀에게 배어 있던 색채를 꺼내주고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한 남자가 나타났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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