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문열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을 때였다. 전에도 몇 번 본 책이라 이제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따끔거렸다. 삼십 년 가까이 된 기억이 수면 위로 떠 오르더니 추억하고 싶지 않은 그때 그 시간이 점점 더 오롯해졌다. 장면마다 들어찬 아이들의 이름과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소설은 나를 6학년 교실로 성큼 데려다 놓았다.
찢어진 청바지에 줄무늬 스웨터를 입은 그 아이는 소설 속 엄석대처럼 키가 컸고 또래 사이에서 제왕처럼 군림했다. 쉬는 시간이면 몇몇 남학생들이 그 아이의 주변을 서성이며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곤 했는데, 이들은 친구라기보다 위아래가 구분되어 복종만이 남은 조직 같았다. 그 아이는 유독 한 친구의 뺨을 때리며 시비를 걸었고 종종 빵 셔틀을 시키는 등 아주 볼썽사납게 굴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무서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단정했다. 여학생들은 건드리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지을 뿐이었다. 그 아이의 시선 밖에 있는 남학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체육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그 아이가 싫은 소리를 하거나 어깨를 치고 가도 아이들은 더 큰 분란으로 번지지 않게 알아서 일을 무마했다.
약속이나 한 듯 학급 구성원 모두가 그 아이를 어쩌지 못한 데에는 선생님의 안일함도 한몫했다. 퇴임을 앞두고 계신 선생님은 학급 일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종종 술 냄새를 풍겼다. 그 아이의 불량한 태도에도 한두 마디 훈계가 전부일뿐, 수업 중에 교실을 나가거나 늦게 들어와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담임 선생님 역시 엄석대를 어쩌지 못한다. 오히려 엄석대에게 권한을 위임한 듯 학급 일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엄석대는 아이들이 청소를 제대로 했는지 검사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퇴짜를 놓았고, 숙제 검사를 하며 매를 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런 엄석대에게 물건이나 음식을 자진 상납하며 굴종하곤 했다.
서울에서 전학 온 한병태는 그런 엄석대의 행동이 자유와 합리에 어긋난다며 대항했지만, 돌아오는 건 따돌림과 괴롭힘 뿐이었다. 담임에게 엄석대의 만행을 고발하고 아버지에게 부당함을 호소해도 모두 병태를 나무라기만 했다. 마침내 병태는 외로운 싸움을 끝내기로 마음먹고, 엄석대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 엄석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병태의 고단했던 시간을 위로하듯 자신의 그늘에서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게 한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담임이 엄석대의 독재를 바로잡기 위해 매를 든 순간, 모든 상황은 뒤바뀐다. 전교 1등이었던 엄석대의 시험 점수가 실은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시험지를 바꿔준 결과였다는 게 밝혀지고, 급기야 반장 선거를 다시 하기에 이르자 엄석대는 교실을 뛰쳐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 담임은 잘못을 뉘우치는 아이들에게도 매를 들어 부당한 권력을 몰아내지 못한 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대가가 얼마나 뼈아픈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너희들도 값은 치러야 한다. 첫째로는 지난날 너희들이 저지른 비겁함에 대한 값이고, 둘째로는 앞으로의 삶에 주는 교훈의 값이다. 한번 잃은 것은 결코 찾기가 쉽지 않다. 이 기회에 너희들이 그걸 배워 두지 않으면,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벌어져도 너희들은 나 같은 선생님만 기다리고 있게 될 것이다. 괴롭고 힘들더라도 스스로 일어나 되찾지 못하고, 언제나 남이 찾아 주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소설을 읽고 나서도 한동안 삼십여 년 전 교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건 바로 새로 부임한 담임의 호된 질타 때문이었다. 당연한 권리를 빼앗기고도 아무 말하지 못한 채 그저 내가 당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때, 나는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그 아이의 폭주를 못 본 척하고 있으면 안 되었다. 반 아이들과 담임은 그 아이의 만행을 못 본 척하며 졸업하기만을 기다려서도 안 되었다. 뺨을 맞으며 빵 셔틀을 감내하는 친구를 모른 척해서도 안 되었다. 그 아이가 멋대로 굴 수 있었던 건 우리 모두가 침묵해서였다.
병태가 엄석대를 다시 본 건 삼십여 년이 흐른 뒤였다. 피서를 가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역을 나서다가, 귀에 익은 외침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사복형사에게 양팔을 붙잡힌 석대가 비척비척 끌려가고 있었다. 병태는 그날 밤 술잔을 비우며 뚜렷하지 않은 어떤 감정에 눈물을 떨궜다. 슬픔인지 절망인지 안도감인지 모르는.
나는 지금 그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그와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이 여전히 학교 안에 있다는 걸 안다. 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지 못해 피해를 보는 학생들과 힘겨워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도. 오래전 그 아이를 보며 불똥이 튈까 봐 걱정했던 내가 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제2의 엄석대가 나오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학교에 있다. 부당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아이에게 맞설 수 있는 친구들의 연대와 어른들의 지지. 그걸 기대하는 건 욕심일까. 또 다른 누군가가 과거를 회상하며 죄책감을 느낄까 봐 나는 두렵다.
여담으로 한 마디 덧붙이면, 십 년 전쯤이었나?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한 친구가 온라인 모임을 만들었다며 링크를 남겼길래 우연히 들어갔다가, 사진 한 장을 한참 동안 바라본 기억이 있다. 턱시도를 입고 포즈를 취한 한 남자. 아내가 될 여자의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남자는 삼십여 년 전 그 아이의 괴롭힘에 늘 구부정한 자세로 두 뺨을 매만지던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의 웃는 모습이 꽤 멋지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진심으로 그 친구의 행복을 바랐고 잘 살아주어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