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죠? 이 말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지은 유홍준 교수가 저서에 쓴 후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있어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요. 요즘은 줄여서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를 ‘아만보’라고도 부른답니다.
유홍준 교수는 문화유산을 보며 이 명언을 남겼지만, 저는 학생들과 만날 때마다 ‘아만보’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수업할 책의 내용뿐 아니라 책이 써질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작가 등 주변 정보들까지 공유하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오늘은 5학년 학생들과 함께 읽은 <흥부전>으로 그 과정을 소개합니다.
<흥부전>은 착한 흥부는 복을 받고 욕심 많은 놀부는 벌을 받는다는 점에서 권선징악을 대표하는 고전 소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고 권선징악만 논한다면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제대로 맛을 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흥부전>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사회 제도의 모순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부분을 짚어본다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생각이 오고 갈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는데요. 함께 수업한 학생들은 작년에 저와 한국사 책을 읽은 경험이 있어 이 과정이 더욱 수월했습니다.
선생님 : “여러분, 놀부가 가른 박에서 노인이 나왔던 장면, 기억하나요?
노인은 놀부의 아버지가 ‘껄떡쇠’라는 하인이었다고 말했는데,
놀부는 어떻게 양반이 될 수 있었을까요?”
학생1 : “돈 없는 양반들이 족보를 팔았어요.”
학생2 : “나라 살림이 어려워져서 돈 받고
공명첩(空名帖:이름만 비워놓은 양반 신분첩)을 팔았어요.”
당시에는 돈만 있으면 양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양반의 수가 전체 인구의 70%까지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이 부분을 기억해내며 다음 질문에도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선생님 : “그렇다면 나라 살림이 어려워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학생 1 :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 때문에 먹을 게 없었어요.”
학생 2 : “탐관오리 같은 못된 관리들 때문이에요.”
선뜻 답을 하는 학생도 있고, 기억을 더듬기 위해 두 눈을 깜빡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속도만 다를 뿐 그동안 쌓아 두었던 배경 지식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는 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 : “그럼 양반이 아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돈으로 신분을 샀을까요?”
학생 1 : “나라에서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줘서 생산량이 늘어나니까,
먹고 남은 걸 팔았어요.”
학생 2 : “각자 재배한 걸 팔아야 하니까 시장이 생기고 화폐도 생겼어요.”
저는 학생들의 말에 부연 설명을 하며 상품이 되는 작물을 재배해 판매했다는 점도 짚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흥부는 가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을지 물었습니다.
학생 1 : “자식들이 너무 많아서요.”
학생 2 : “흥부는 돈을 벌지 못했어요. 대신 매 맞는 품이라도 팔아서 먹을 걸
사려고 했지만 그일 조차 구하기 힘들었어요.”
<흥부전> 속에 등장하는 빈부의 격차와 가난의 악순환은 비단 조선 후기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서도 얼마든지 나눠볼 수 있는 내용이었지요. 그래서 자식이 많으면 가난한 게 당연한 건지, 대신 매를 맞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관점을 확장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모두가 잘 살 수 있도록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방법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고받은 이야기는 또 다른 수업의 배경 지식이 되어 학생들의 입에서 흘러나올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 외에 학생들이 <흥부전> 속 등장인물이 되어 현대에서 온 기자의 질문에 대답해 보는 가상 인터뷰를 해봤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학생들은 맡은 역할에 몰입해 실감 나게 목소리 연기를 펼쳤습니다. 눈으로 읽을 때는 맛보지 못한 생동감이 교실 곳곳에서 피어올랐습니다.
‘아만보’의 즐거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수업의 대미를 장식하는 글쓰기 시간, 흥부전의 일부를 새롭게 써보자는 제안에 학생들은 크게 호응했습니다. 주제는 무엇으로 할지, 배경은 과거와 현재 중 언제가 좋을지, 사건은 어떻게 바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표정과 몸짓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보였습니다.
키득키득, 까르르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탄생했습니다. ‘세상에 나쁜 형은 없다’ ‘놀부의 개과천선’ ‘놀부의 문단속’ 등 제목만 들어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학생들은 조선 후기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었기에 익숙했던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자신만의 새로운 시선으로 다채롭게 살펴보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요즘 사회에 투영해보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신나게 글까지 썼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아만보'야 말로 책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 꾸준히 의견을 주고받는다면 배움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는‘아만즐’도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아는 만큼 즐거워질 테니까요.
** 이 글은 한우리독서토론논술에서 발간하는 교육 매거진 '한우리에듀레터' 및 '한우리독서토론논술 공식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