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rce Jan 07. 2021

책 <눈먼 암살자>

역시 마가렛 애트우드 이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다른 소설들처럼, 이것도 역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멈출수가 없다.

애트우드의 소설 중 가장 먼저 샀던, 아마 4년 전즘 샀던 책인데 안읽고 있다가, 최근에 엘레나 페란테가 꼽은 최고의 책들 중 하나로 언급되어 생각이 나서 꺼내들었다.

처음에 읽으면서 페란테는 <증언들>이 아니라 왜 <눈먼 암살자>를 꼽은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 즘, 아무 다른 생각도 할 수 없이 빨려 들어갔던 것 같다.

아이리스의 이야기, 로라의 이야기, 아니 20세기 초중반 캐나다의 이야기, 아니 21세기를 사는 한국에 사는 여성인 나의 이야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잘 드러나는, 가장 잘 쓰여진 작품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세기 초에 태어난 한 여성, 한 가족의 이야기가, 캐나다를, 한국을 넘어 그리고 1900년대 초중반을 지나 2020년까지 유효하다.


일단 이야기의 구조가 훌륭하다. 아이리스의 회고, 책 속의 책으로 나오는 '눈먼 암살자'의 이야기, 그리고 '눈먼 암살자' 속의 책 이야기.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는데 정교하게 촘촘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와중에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애가 타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자마자, 먼저의 이야기를 잊고 또 다시 해당 전개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책 속에 나오는 '눈먼 암살자'의 화자가 누구인지, 또 로라는 어떤 불행을 겪는 건지, 이야기 내내 궁금한 내용 투성인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예상이 어느 정도 되기도 하지만 긴장을 늦출수도 없다. 세 가지 이야기는 서로 이야기에 대한 응답을 암시처럼 주고 받는다.

아이리스가, 책 속의 책 '눈먼 암살자'의 화자가 묘사하는 문장들은 날카롭고 섬세하다. 처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 거의 모든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감탄하며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애트우드의 글을 읽을때 그렇다. 마지막으로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가 5~7년 전일텐데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예상하건대 애트우드의 글보다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내가 기억하는 역사란 그렇게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고 , 특히 이렇게 깔끔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진짜는 결코 팔리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악취도 풍기지 않는 그런 과거를 선호한다.'

''그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저 접어두었을 뿐이다. 희망을 항상 품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도록 비상시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최선이고, 음식물은 그렇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작은 기쁨 또한. 의지할 만한 꽃, 예를 들면 처음 피어난 튤립 같은 것. 맨발로 거리를 뛰어다니며 "불이야!"하고 외치는 것 같은 정신 나간 짓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비밀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밀이 없는 것처럼 행동 하는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죄송하게도 갈수가 없겠네요. 선약이 있거든요." 그녀는 전화에 대고 말한다. 어떤 날에는, 특히 맑고 따스한 날이면, 그녀는 생매장된 기분이 든다. 하늘은 푸른 바위로 된 둥근 지붕이고, 태양은 진짜 햇빛이 조롱하듯 들어오는 둥근 구멍같이 느껴진다. 그녀와 함께 매장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오직 그녀만 알고 있다. 그녀가 이것을 발설하며 그들은 그녀를 영원히 격리해 버릴 것이다. 그녀가 가진 유일한 기회는 마치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언젠가 꼭 나타나게 되어 있는 커다란 균열을 기다리며 살피는 것이다.' '트로이의 헬렌이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뺨에 밀가루를 묻힌 채 앞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키르케와 메데이아에 대해 내가 아는 바로는, 그들이 요리해 낸 것은 법정 상속인을 독살하거나 남자들을 돼짖로 바꾸기 위한 마법의 약뿐이었다. 시바 여왕으로 말하자면, 토스트 한 조각이나 만들어 봤을지 의심스러웠다. 러스킨이 어디서 숙녀들과 요리법에 관한 독특한 견해를 얻었는지 궁금했다. 그럼에도 이 이미지는 우리 할머니 세대의 많은 중산층 여성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들은 몸가짐이 침착하고 접근하기 어렵고 심지어 제왕적이기도 하지만 신비롭고 치명적일 수도 있는 조리법을 가지고 있었고, 남자들의 가장 자극적인 열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그리고 언제나 숙녀가, 빵을 나눠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애로운 선물을 나눠 주는 자.' (여기에선 혼자 웃고 말았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유머란!) '그녀의 말은 '구식'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모멸감을 느꼈다. 나는 항상 그 유리창이 상당히 멋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위니프리드의 판단이야말로 바깥세상의 판단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런 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선고를 내리는 세상, 내가 합류하고 싶어 안달하던 바로 그 세상. 이제 그런 곳에 내가 얼마나 부적합한지 깨달았다. 얼마나 촌스러운지, 얼마나 조야한지.' "저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진정한 나'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자신이 정말로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쨌거나, 진정한 나라는 것이 무슨 의미죠? 가정 배경 뭐 그런건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속물근성이나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하죠. 나는 그런 변명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뿐이에요. 내겐 딸린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 어떤 것도 저를 붙들어 맬 수 없어요." '로라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음치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음악이 연주되면 어떤 소리를 듣게 되지만,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식으로 듣는 것이다.' '그 단추들이 감추어 주는 것은 늘어진 것들, 약한것들, 수치스러운 것들, 하지만 불가피한 것들, 즉 세상이 필요로 하지만 경멸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훨씬 더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이렇게 모든걸 꿰뚫어 보는 것처럼 예리하면서 섬세한, 아름다움에 가까운 문장들은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이 글을 쓴 사람은 분명 모든 것을 잘 알고 지혜롭게 현명한 삶을 살고 있을거야, 그러나 불행하기도 할거야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후자에 가깝겠지. 우리가 아는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의 삶이 알려주듯이. 아니야, 모르겠다 누가 알겠는가. 아이리스가 이해되면서도 이해되지 않고(인간이 그런것이겠지) 로라처럼 살고 싶다가도 그러고 싶지 않다. 왜 아직 인류는, 어느 시대나 어느 곳이나 여자로서 살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가. 인간으로서만 힘이 든 세상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내 세대에는 그 때가 물론 오지 않을 것이고 아마 수백년 후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구의 수명이 거기까지 다다를지도 의문이다. 문장마다 감탄하느라, 흥미로운 이야기를 쫓아가느라 단숨에 읽은 터라 꼭 여러번 다시 읽으며 음미하고 싶다. 역시 마가렛 애트우드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나고 나면 마음이 몹시 어지럽다. 오랫동안 어지러운 날들이 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