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rce May 20. 2021

가정의 천사? 악마?

(제목은 제인 오스틴이 언급한? 가정의 천사에서 따왔는데, 정확한 워딩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아이가 나에게만 매달리는 상황이 못견디게 싫다.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한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는것. 그런데 아이를 낳고나서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게 되고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아이가 나와 보낸 시간이 더 많으므로, 잠이 올때나 불안할때 나를 더 찾고 동거인이 달래면 원치 않는다. 그러니까 동거인은 몇번 시도하다 아이도 짜증내고, 나도 아이의 짜증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라 화를 내니 그 자리를 떠난다. 그러면 나는 방관자여도 되는 동거인의 편안한 입지에 너무 화가 난다. 아이를 낳고도 참 편하구나. 


어제 밤에도 터져버렸다. 밤 9시즘, 아이가 피곤한데 잠잘 시간이 지나자 잠투정이 시작됐다. 책을 읽어달라고 5권을 가지고 왔다. 

나: 3권만 읽자

아이: 네

책을 세 권 다 읽고 덮으며,

나: 이제 자자, 불을 껐다.

아이: 한권만 더요, 다시 불을 킨다.

아이는 버릇처럼 꼭 한 번만 더, 하고 싶어한다. 과자를 먹을때도 한개만 더, 티비를 끄기 전에도 한 에피소드만 더, 책도 한 권만 더. 


어제 같은 상황에서는 한 권만 더 읽으면 금방 잠에 들수도 있었을거다. 그런데 나도 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짜증이 났다. 한 번만 더, 가 통하지 않을때도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아이에게 계속 이렇게 허용해줘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고(지금 생각하면 괜찮은것 같은데..) 나도 힘들었다. 불을 꺼버렸다. 자는거야 이제. 동거인은 거실에 누워있다. 내가 책 읽을동안 본인은 설거지를 다 하고 소파에서 쉬는 중이었다. 평소같으면 아이가 동거인을 같이 자자고 데려오는데, 나에게 책 읽으라고 우는 바람에 나와 아이만 침실에 있는 상황이었다. 그게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나는 이렇게 아이한테 시달리는데 본인은 아이가 우는 것에 신경이나 쓰고는 있는 건지, 신경을 쓴다고 해도 어쨌든 본인은 아이에게서 떨어져 방관하고 있는 상태지 않나. 그래서 동거인도 아이 옆에 누워서 달래라고 소리쳐 불렀다. 


동거인은 군말 없이 침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아이가 짜증난 상태니, 아빠는 가라고 소리지르고 난리다. 결국 내가 책을 한 권 더 읽었고, 이제 조용히 자라고 몇 번 더 언성을 높였다. 계속 아빠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동거인이 아이를 달래느라 토닥이는 걸 싫어했다. 졸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빠랑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다.) 


동거인이 아이가 있는 방을 나가면 나도 나가겠다고 했다. 나 혼자만 이 상황을 끝까지 책임져야 되는 사람인게 정말 싫다. 나가면 그 뿐인가? 그런 삶은 얼마나 인생이 살기 쉬울지. 나도 짜증나면 그냥 나가버려도 되면 좋겠다. 


문제가 생겼다고? 아 귀찮군, 가야겠다. 상황 종료. 얼마나 편리한가.


아이가 자고 방을 나와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동거인도 나에게 화가 난거 같기도 했다. 그런데 왜? 내가 아이한테 화내서? 자기 쉬는데 들어와 짜증내는 아이 옆에 있으라고 해서? 그런데 조금 있다가 동거인이 나와서, 혼자 뭐 먹냐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을 건다. 우리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동거인이 딱히 잘못한게 있는 것 같지도 않지만, 이유를 모르겠지만 화가 났다. 방관자 같은 태도, 그렇지만 또 시키는건 군말없이 하니까 착하다고 여겨야 할까.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나는 이번달부터는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집에서 개인 시간을 꽤 갖고 있는 상태다. 동거인은 본인도 설거지 하고 잠깐은 자기 시간을 가져도 될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싶다. 


이런 저런 계산과 생각들, 내가 여자라서, 혹은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아이 돌봄이 나에게 치우칠 때도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때마다 괴롭다. 정신적인 소모가 크다. 생각을 정리하고 이제 더이상 생각이나 감정을 낭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동거인이 책을 읽거나 놀아줄때가 더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 유치원에서 낮잠을 짧게 자니 밤에 자는 시간이 빨라지면서 졸리면 나를 찾는 경향이 강하므로 내가 재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게 나의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책 <희랍어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