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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rce Apr 07. 2021

책 <희랍어 시간>


좋았다. 유쾌한 내용도 아니고, 자기계발서같은 책도 아닌데 곁에 두고 삶의 지침처럼 꺼내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처럼 떠다니는, 그리고 입가에 머무르는 문장들.

언젠가 한강 작가님이 인터뷰에서  '소년이 온다' 이후엔가.. 미문을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던  같다. 희랍어시간은  이전에 쓰인 책인것 같은데( 생각이  시점에 대한 확신이 없다. 다시 찾아봐야겠다.)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연필로 옮겨적고, 입으로 소리내어보고 싶었다. 아름답고 슬픈 노래처럼.

찌르지 않고 공허하지 않고 무의미하지 않은 말들만  하고 싶기도 하지만, 외롭고 싶지도 않다. 타인을 견디든가 고독을 견디든가 였던가.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날들이다. "돌이킬  없이 인과와 태도를 결정한 뒤에야 마침내 입술을   있는 언어." 그런 언어만 말할수 있는 삶이란 가능할까. 그래서 언어를 결국 잃기로 결정한(결정했다고 느껴진다), 여자에게  공감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눈이 멀고 있는 남자가 ' 꿈이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가. 피가 흐르고 뜨거운 눈물이 솟는가.' 이렇게  대신 여자는 피가 흐르고 뜨거운 눈물이 솟지 않도록 언어를, 감정을 차단하기로 마음먹은듯 했다. 남자는 여자를 보았을때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침묵을   처음이었어." 남자에게 희랍어가 '고요하고 안전한 '이었던것처럼 여자에겐 침묵이 그랬던것 같다. 그런 슬픔이란 무엇일까. 상담사의 말처럼 어머니가 죽고,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그럴만했다지만 여자의 말대로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여자는, " 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 나는 뱉는 쪽이다. 무엇이든 차오르려고 하면 차오르기도 전에 우수수 뱉고야 만다. 승리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자꾸 읽어 마음에 작은 등불처럼 밝혀두고 싶은 기분이 드는것은. 그냥 세상의 현명한 말들처럼 참는 것이 아니다. 기어이 침잠하는 것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싫어한다. 혼자 고고하다고 욕을 하거나 미쳤다고 한다.

여자는 화해할  없다고 했다. 환한 봄날, 노숙자의 시체, 늦은 밤의 지하철 끈끈한 땀에 젖은 어개들이 겹치는 사람들의 흐릿한  , 폭우가 퍼붓는 간선도로, 수천 개의 스케이트 날로 할퀴어진 하루하루라고 햇다.  모든걸 잊기 위해 주고 받는, 뚝뚝 끊어지는 어리석은 농담들을. 가끔 믿을  없을 만큼 깨끗하고 고요한 말들이 문득 방언처러 흘러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이 화해의 증거는 아니라고. 보통의 사람들은 삶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들이 스케이트 날이 되어 할퀴어지는 사람의 깊은 침묵. 그것이 문장으로 글로 옮겨져 전해지는 한강 작가의 책은 이상하게 항상 위로가 된다.

고요하고 희미한  기척들,
믿어본  없는 신의 파편들.

한강의 글이 나에게는 그것이라고 느껴진다.

글이 너무 조악해서 내가 느낀 것과는 다르게 너무 감상적인 글이   같아 남기지 말까 하다가 이거라도 쓰지 않으면 몇일이면  날아갈 감정들일 것을 알아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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