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예배당
70년대 시골마을에 있던 작은 교회는 '예배당'이라 불렸다.
다다미방처럼 생긴 바닥을 반 갈라서 남녀 나눠서 앉던 곳. 불교와 기독교와 남녀호랑교와 푸닥거리와 조상신이 평화롭게 혼재했던 촌동네에서 예배당은 아이들로 북적였다.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없이 농사일로 바빴던 어른들은 '주일'이 되면 아이들을 예배당으로 보내곤 했다. 당시 척박한 시골마을 예배당은 탁아소이며 문화센터였다.
포르투갈 안내 책자에 '영혼의 예배당'이라 불리는 성당이 있었다.
포르투에 있는 알마스 성당.
포르투갈어 '알마스'의 뜻이 영혼이다.
성당을 굳이 예스럽고 목가적인 느낌의 예배당으로 바꿔 부르는 이유는 뭘까.
알마스 성당은 포르투갈어로 '카펠라 다스 알마스', 영어로는 'chapel of soul'이다.
'church' 가 아닌 'chapel'.
사전을 찾아봤다.
신부나 목사가 상주하며 예배를 주관하면 성당이나 교회, 신부나 목사 없이 신자들이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공간은 채플이다. 신의 대리인이 없어도 누구나 편하게 기도를 하거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 그러고 보니 병원에서도 채플을 본 듯하다.
대학시절, 매주 수요일마다 출석했던 채플 수업이 왜 채플이라 불리는지 환갑을 앞두고야 깨달았다.
역시 여행은 배움과 깨달음의 장이다.
18세기 말엽 알마스 성당이 지어질 때는 회반죽으로 칠한 평범한 흰색 벽이었다고 한다.
1929년에 아줄레주 타일로 외벽을 탈바꿈한 후 명실상부한 관광명소로 거듭나게 된다.
포르투 도심에는 아줄레주 타일로 외벽이 장식된 성당이 모두 세 곳이나 된다.
알마스 성당과 산타 일드폰수 성당, 그리고 카르무 성당.
알마스 성당에서 시작해서 산타 일드폰수를 거쳐 카르무까지 도보로 20여 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내친김에 후루룩 다 돌아보자 싶었는데 딸이 질색팔색 난색을 표했다.
우리 여행은 성지순례가 아니라는 강변.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리하여 세 곳 성당 중에서 아줄레주 도포 면적이 가장 넓은 알마스만 가기로 했다.
다양한 종교와 온갖 잡신이 평화롭게 혼재했던 어릴 적 내 고향 마을과 달리 포르투의 종교적 흔적은 오로지 천주교에 기반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 수많은 비극을 초래한 것 중 하나가 유일신 사상이 아닌가 생각하며 영혼의 예배당으로 방향을 잡았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세찬 비는 그쳤다. 우산을 받치지 않아도 그럭저럭 다닐만한 정도.
얼마 걷지 않아서 도로를 사이에 두고 파랗게 반들대는 아줄레주 타일 벽이 보인다. 알마스 성당의 너른 외벽이다.
좁은 인도에 사진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 게다가 지나가는 사람까지 아울러 있으니 복잡하다.
벽을 뒤덮은 타일은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라는데 그것까지 눈에 들어오지는 않고, 다만 사람들이 잠시 없을 때를 기다려 사진 한 컷 제대로 남길 생각만 가득하다.
우중충한 날씨에 푸릇한 타일이 기대만큼 쨍하게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
기다란 아줄레주 타일벽보다는 성당 정문 방향이 더 아름다웠다.
아담하고 낡고 정겨운 느낌이 말마따나 예배당답다.
딸은 멀찍이 도로를 건너서 성당 전경을 사진에 담기 바쁘다.
성당 안에 들어가자고 하니 도리질을 한다.
'둘이 절대로 떨어져 있지 말라'던 남편의 신신당부를 잠시 무시하기로 했다.
알마스 성당은 무료입장이다.
예배를 드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 무료입장이 당연하다 싶다.
비 오는 평일 오후, 넓지 않은 성당 안은 차분한 듯 붐볐다.
긴 의자가 줄줄이 놓인 곳은 빈자리가 더 많지만, 뒷쪽은 성당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어수선하다.
선 채로 잠시 짧은, 하지만 간절한 기도를 했다.
예배당을 다니던 어릴 때나 범신론적 세계관을 지닌 지금이나 나의 기도는 늘 기복적이다. 이른바 종교와 미신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기복신앙. 일견 조야해 보이지만 그만큼 진실되기도 하다.
세월의 흐름이 바꾸어 놓은 것은 있다.
시골 예배당에서 엄마가 오래 살기를 기도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자식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이역만리 포르투, 영혼의 예배당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으면 인간은 강해지기도 하지만 또한 약해지기도 한다.
포르투의 도처에 있는 성당과 예배당도 결국 인간의 약한 마음의 반영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