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포르투 2일차 -맛집

부모와 자식

by 카이저 소제

엄마와 딸.

둘 다 뭘 많이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식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많이 다르다.

오랜 자취생활로 인해 '시장이 최고의 반찬'임을 몸소 체득해 온 나는 '한 끼 때우는' 식사가 익숙하다.

뭘 먹든 배만 부르면 된다.

반면에 딸은 맛있는 것을 제대로 잘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행 중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은 오롯이 딸의 몫이었다.


마제스틱 카페를 나와서 미리 점찍어둔 식당, 이른바 포르투 로컬 맛집을 찾아 나섰다.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한다.

구글 지도와 건물을 번갈아 보며 걷는 딸, 그리고 하릴없이 두리번대며 세상 편하게 따라가는 엄마.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대사가 생각난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

"뭐를 마이 멕이야지."

뭘 먹을 때뿐만 아니라 먹으러 갈 때도 마음은 평화롭다.


이 평화로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참았다가 터지듯 갑자기 쏟아지는 비.

리스본 버스터미널 노상 카페에서 우산 하나를 잃어버린 터라 급히 우산 한 개를 샀다.

기념품 가게 앞에 수북이 쌓인 우산, 부실해 보이는 접이우산 하나에 8천 원 정도다.

가격에 놀라는데 그 와중에 더 비싼 자동우산을 권하는 주인.

관광지에서 관광객은 봉이다.

바람까지 대차게 불어오니 무시로 우산이 뒤집어진다. 뒤집힌 우산을 바로 잡을 때마다 빗물 세례다.


얼마나 걸었을까, 구글 지도상 목적지인 식당은 불과 도보 1분여 앞이다.

근데 사방을 둘러봐도 안 보인다.

작은 도로를 건너봐도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봐도 목적지에서 멀어져만 간다.

딸이 화풀이 삼아 푸념을 한다.

"왜 맨날 나만 식당을 찾아?"

나는 짜증이 난다.

"아무 데나 가서 먹으면 되지 않냐?"

낯선 나라 낯선 거리니까 그나마 이 정도 수위의 언쟁으로 꾹꾹 눌러졌다.


골목 안에 식당이 하나 보이긴 한다.

식당 앞에 서 있는 앞치마를 맨 남자분과 멀찍이 눈을 마주쳤다.

들어갈지 말지 고민스러운데 지나가며 설핏 보니 식당 안이 텅텅 비어있다.

갈길이 바쁜 듯이 휘잉 지나쳤다,

빈 테이블이 즐비한 식당은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이것도 '넛지 효과'의 일종인가.

줄 서서 먹는 식당에 사람들이 더 몰리는 것.

사람들은 자유의지로 나름의 선택을 하는 듯 하지만 결국 타인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폰을 들여다보던 딸이 근처 다른 맛집으로 가자고 한다.

그 경황에 인터넷을 뒤져 플랜비 맛집을 찾아내는 정성이라니.

예약 없이는 밥 먹기 힘들다는 곳이다.

일단 비를 피할 생각에 무작정 들어갔다.

어둡고 좁은 실내에는 식사 중인 사람들의 실루엣이 빼곡하다.

아니나 다를까 예약 여부를 묻는다.

예약 없이 왔다고 하니 잠시만 기다리란다.

좁은 입구에 서있기가 옹색하고 불편하지만 비바람을 피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노골노골해진다.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자리가 난다.

벽 쪽에 붙은 아담한 구석자리.

다닥 붙은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젊은 한국인 남녀 한쌍이 조용히 식사 중이다.

역시 소문난 맛집에 오면 한국인을 만날 수 있다.


사진까지 있는 메뉴판이라 음식 고르기는 쉬웠다.

나는 까맣고 윤기 나는 면위에 해산물이 듬뿍 올라간 봉골라 파스타를 먹었다.

근데 딸이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와인을 주문한 건 알겠는데 딸이 먹었던 음식이 스테이크였는지 문어였는지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식당 이름도, 음식 가격도 기억에 없다. 기록에도 없다. 여행용 체크카드 이용내역을 뒤져보니 결제한 이력이 없다.

이 날 밥값은 딸이 냈음이 분명하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딸이지만 밥값 찻값은 웬만하면 내가 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근데 왜 이 식당에서는 딸이 결제를 했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통째로 기억이 날아간 듯하다.

까만 봉골라 파스타 사진 한 장만 까맣게 남아있다.


다만, 또렷이 기억나는 것.

화장실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이 딸의 등 뒤로 보인다는 것.

좁은 실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라 화장실 계단 바로 앞에도 2인용 탁자와 의자를 둔 듯하다.

의자와 계단 사이의 실재 거리가 얼마인지는 모르나 맞은편에서 볼 때는 불과 몇십 센티미터로 보인다.

딸 뒤로 보이는 어둡고 가파른 계단 때문에 밥 먹는 내내 불안했다.

와인 한 잔 마신 취기에, 혹은 밥 먹다 배불러서 무심결에 의자를 뒤로 쓱 밀어낼까 봐, 그리하여 가파른 계단 아래로 나동그라질까 봐.

"뒤에 바로 계단이니까 의자 밀지 마."

이 말을 거듭 속닥였을 것이다.

사람이 가득 찬 식당은 포크 부딪히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묵직하게 고요했다.

봉골라 파스타 조개껍질 달그락 대는 소리에 신경 쓰느라, 딸의 의자가 뒤로 쓱 밀릴까 내내 신경 쓰느라 정신줄 몇 가닥은 놓았나 보다.

엄마가 불안해하거나 말거나 딸은 '분위기 좋은 조용한 맛집'에서 와인을 곁들여 맛있는 식사를 했을 것이다.


늙은 부모에게 나이 든 자식이란 여전히 걱정할 것 많은 '물가에 내놓은 자식'이다.

그리고 가끔은 적지 않은 밥값을 턱턱 내는 든든한 자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