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포르투 2일차-스타벅스

정형화된 편리함

by 카이저 소제

우리나라에 카페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카페에서라도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상담차 들렀던 병원에서 상담 선생님이 해줬던 말이다. '당신만 힘든 것이 아니니 힘내'라는 위로의 말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가히 카페의 천국이다.

기업형 체인점 카페는 열외로 하더라도 골목골목 아기자기하게 눈길을 끄는 카페도 무수히 많다.


포르투갈 카페에서 혼자 커피 한 잔 마시거나 친구랑 만나는 약속을 잡는 것?

상상이 안된다.

무엇보다 편하지가 않다. 한마디로 너무 클래식하다.

입구에서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는 것, '들어가도 되냐'는 허락을 받는 것 같아 불편하다.

기껏 앉은자리도 마냥 편하지는 않다. 각 잡힌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들이 주문받고 서빙하느라 쉴 새 없이 옆을 지나친다. 계산을 하려면 앉은자리에서 직원과 눈이 마주쳐야 한다. 타이밍 맞춰 손짓과 눈짓을 보내는 것도 피곤하다. 이것도 그나마 카페에 빈자리가 있을 때의 푸념이다.


영혼의 예배당을 나와서 도심을 구경삼아 걷자니 또 한바탕 비가 쏟아진다. 포르투갈의 봄비는 봄이 무색한 추위를 동반한다. 비를 피하기에는 카페만 한 피난처가 없다. 문제는 들어갈 카페가 마땅치 않다는 것.

클래식한 카페는 앉을자리가 없고 빵집과 식료품점을 겸한 카페는 서 있을 자리도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은 커피와 빵만 먹고사나 싶다.

후줄근하게 걸어가는데 앞에 따악 보이는 낯익은 초록색 그림, 스타벅스 !

살다 보니 스타벅스가 반가운 날도 온다.


입구에서 주문과 동시에 띠리릭 계산을 하는 단순한 시스템이 참으로 좋다. 내 손으로 내가 마실 음료를 들고 내 맘대로 매장을 돌아다니며 앉을자리를 찾는 것도 좋다.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이 캐주얼함이라니.

직원이 이름을 묻는다.

딸이 '신'이라고 말하니 머리를 갸우뚱하며 적는다.

영수증에 'SIN'으로 적혀있다.

글자를 쓰면서 당황스러웠겠군.

보는 우리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

일부러 그랬나 싶은 의심을 1초 정도는 했던 것 같다.

사람이름이 '죄'가 되면 안 되니 스펠링이 's.h.i.n'이라고 일단 설명은 했다.

다음에는 '신'이 아닌 '쉰~'으로 말해봐야겠다.


주문하는 곳 옆에 계단이 있다.

위가 아닌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카페라떼와 에스프레소가 놓인 트레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공간 분할이 잘 된 제법 널찍한 곳이 나온다.

2인용 구석자리에 앉았다.

분명 지하로 내려왔는데 반대쪽 창문밖으로는 비 내리는 풀밭이 보인다.

언덕이 많은 포르투의 지형 탓에 이런 구조가 된 듯하다. 지하 같지만 지하 아닌.


불과 두어 시간 전에 머물렀던 마제스틱 카페랑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콧수염 기른 중년 남자나 관광객이 아닌 청년들이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아 브라질레이라'나 '마제스틱' 같은 클래식한 카페에서는 젊은 친구들을 본 적이 없다.

커피가격이 저렴하기도 하지만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젊은이들의 카페는 스타벅스 만한 곳이 없나 보다. 최소한 포르투갈에서는.

벽에 기댄 채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으로 뭔가를 열심히 쓰는 사람, 잔디밭으로 떨어지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 등이 주욱 한눈에 들어온다.

타인들 무리 속에 들어와 있는 완벽한 익명성, 무지 편하다.

빳빳하게 통로를 오가는 정장 입은 직원들이 없는 것도 한몫한다.

벽에 머리를 기웃이 기댄 채 팔짱 끼고 길게 앉아 있으니 살 것 같다. 아침에 호텔을 나온 이후 비로소 제대로 다리 뻗고 쉬는 느낌이다. 직원과 눈맞춤하며 '체크. 플리즈'를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좋다.

"스타벅스가 최고네."라고 말하니

"정형화된 편리함이지."라고 받는 딸.

익숙하다는 것은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이국적이고 낯선 것을 찾아 떠난 여행지에서도 심신이 피곤하면 익숙한 것이 그립다.


일어날 즈음 화장실에 들렀다.

문 앞에 굳건히 붙어있는 번호키 자물쇠. 영수증 비번을 누르고 들어가라는 글이 붙어있다.

이곳저곳 주머니를 뒤져 영수증을 찾아냈다. 물기 묻어 너덜한 구깃구깃한 영수증을 살살 잘 펴서 번호를 누르고 화장실 입장.

도어록까지 달아놓고 출입을 관리하는 화장실이 지저분하다. 빨리 탈출하고픈 화장실이다.

정형화된 스타벅스 시스템은 만국공통이지만 매장관리의 디테일함은 만국이 제각각인 듯.


어쨌든 포르투의 거리를 다시 기운차게 걸어 다닐 에너지를 얻었으니 이 또한 심신이 위로받은 것이리라.

고맙다, 스타벅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