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포르투 2일차 - 볼량시장

시장에 가면

by 카이저 소제

1년간 월평균 재래시장을 가는 횟수는? 월평균 값이 소수점 이하가 될 정도로 가지 않는 편이다.

집 근처에 시장이 없는 탓도 있지만 전통시장이라 불리는 재래시장을 찾지 않아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 인터넷 쇼핑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때문이기도 하다.


근데 해외여행을 오면 부러 발품 팔아 재래시장을 찾게 된다. 재래시장뿐인가. 야시장, 벼룩시장, 노점상 난장 등등 온갖 시장이 구미가 당긴다.

평소 가지 않는 시장을 여행지에서는 가고 싶은 까닭?

색다른 볼거리가 많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도둑시장'이라고도 불리는 리스본의 벼룩시장은 주 2회, 화요일과 토요일만 장이 선다. 아쉽게도 날짜를 맞출 수 없었다.

대신 포르투의 '볼량시장'은 일정에 콕 집어넣었다. 포르투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스타벅스에서 느긋하게 마신 뜨거운 카페라테와 에스프레소.

혈관 속으로 커피를 방울방울 넣은 듯 정신이 번쩍 들고 에너지 만땅이 되었다. 구글지도에 볼량 시장을 찍고 기운차게 찾아 나섰다.

가는 길에 마제스틱 카페 앞을 또 지나간다.

우리가 걷는 길을 실시간으로 지도 위에 죽죽 그으면 가관일 듯싶다.

갔던 길을 또 가는 것은 기본, 직선거리를 지그재그로 얼마나 우회할 것인가. 지도를 펴놓고 보는 2차원의 지면공간과 직접 걸어 다니는 3차원의 현실공간의 간극은 크다. 지도상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곳이 막상 가보면 영화 인셉션의 가상공간처럼 기기묘묘해진다.


얼마 걷지 않아서 시장이 나온다.

도심에 자리 잡은 재래시장.

때마침 쏟아지기 시작하는 비 때문에 시장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얼씨구나 좋았다.

점심과 저녁식사 사이의 애매한 오후에 시장은 붐볐다. 사람과 갈매기가 어울려서 걸어 다니는 시장은 시끌벅적하고 또한 엄청나게 화려하다. 재래시장이라기보다는 반쯤 개방된 마트 같이 깔끔하다.

줄지어 서있는 상점들 위로는 지붕 같은 덮개가 씌워져 있지만 상점이 몰린 곳을 벗어나면 여지없이 비를 맞는다.


품목별로 가게들이 나뉘어 있어서 어디서 무엇을 파는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구획 정리가 잘 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탓도 있다.

입구부터 늘어서 있는 화려한 꽃가게가 와락 눈길을 잡는다. 시장 안에 꽃가게가 이렇게 많다는 것이 신기하다. 꽃을 사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겠지. 아닌 게 아니라 튤립 한 송이씩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인다.

화려하기로는 과일가게도 만만치 않다. 공중에 매달린 바나나와 수북 쌓인 애플망고. 그리고 사과, 배, 귤, 오렌지. 파인애플 등등.

작게 썰어 담아놓은 컵과일과 바로 착즙한 듯한 과일주스도 형형색색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각양각색의 말린 과일은 빚어놓은 음식 모형처럼 예쁘다.


사람들이 복닥이며 시끌시끌한 곳은 역시나 와인 가게 앞이다. 시음을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 모금 마셔보고 싶은데 공연히 주눅 들어서 포기. 맛을 알아야 시음을 하지.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대형마트에서 술은 시음을 해 본 적이 없다. 와인 잔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잔술로도 파는 듯하다.

햄과 샌드위치와 빵을 파는 가게도 붐비기는 매한가지. 빵을 살까 싶어 기웃거려 봐도 어떤 맛인지 가늠이 안된다. 지난번처럼 정어리 듬뿍 들어간 빵을 고를지도 모른다. 시장에 와서 오만가지 걱정을 다하며 돌아다니고 있다.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는 곳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시장답다. 초콜릿과 코르크 공예품과 카드와 냉장고 마그넷 등이 때깔 좋게 진열되어 있다.

1개에 6.5 유로인 판초콜릿은 2개 사면 12유로.

여러 개를 사면 가격도 깎아주는 것을 보니 시장이 달리 시장이 아니다.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보며 누구에게 주면 좋을지 얼굴을 떠올리며 매치를 해보는데 쉽지 않다. 저렴하고 예쁜 물건들은 사는 즐거움은 있지만 받는 기쁨은 장담할 수 없으니. 받는 사람 마음까지 헤아리느라 지갑은 쉬이 열리지 않는다.

옆 가게는 더 좋은 물건이 있을 듯하여 비교하며 다니다 보니 어느새 시장을 한 바퀴 다 돌았다.

온갖 상품이 널린 시장에서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시장에 들어설 때는 가방을 빵빵하게 채울 기세였는데 쌓인 물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레 질려버렸다.


간이 테이블이 놓여있는 시장 가장자리는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건물 계단이나 구석진 곳 여기저기도 뭔가를 먹는 사람들로 붐빈다. 흘러든 빗물로 바닥이 흠씬 젖어있어서 밥을 먹기는 다소 심란해 보인다만 그건 내 생각. 사람들은 행복하고 활기차 보인다.

2인 식사에 5,6만 원은 기본인 레스토랑이나 클래식한 카페에만 사람이 넘쳐나는 것이 아니었다. 테이블이나 의자 하나 없는 시장 구석진 자리에도 접시와 와인잔을 들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같은 도시에서도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것은 달라질 수 있다.


시장 구경도 할 겸 아침 식사용 먹을거리도 살 겸 찾아 간 볼량시장.

눈요기만 잔뜩 한 채 아무것도 사지 않고 빈손으로 나왔다.

역시 습관은 무섭다.

평소 하던 대로 베이커리에서 빵 사고 마트 가서 소량 포장된 과일을 사야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