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처음 북아트를 접하고 신기한 책 형태와 팝업을 배우면서 이거라면 이야기가 저절로 나오겠다고 생각했어요. 보기만 해도 재밌고 호기심이 마구 발동했으니까요.
다양한 책 형태를 접어서 팝업도 잔뜩 만들어 넣고 힘이 들어간 태도로 "자 어때? 대단하지! 한 번 만들어봐!"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아이들도 저처럼 신기해하며 다가와서 하고 싶어 안달이었죠.
글을 쓰며 자신을 발견해가는 기쁨
하지만 이야기를 쓰고 발전해 가는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제 생각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주지 않았어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부러 감추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번개처럼 스치는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그다음을 넘어가지 못하고 멈춘 이야기의 머리만 바라보며 저는 진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애초에 제가 가졌던 호기심과 즐거움의 이유인 신기한 책 형태와 팝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었죠.
더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자명한 사실이 눈앞에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건 바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즐거움, 글을 쓰며 자신을 발견해가는 기쁨, 바람처럼 스치는 수많은 생각들의 정체를 밝혀 분명한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는 성취감, 그리고 그 글을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어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얻고 다시 생각을 나누는 행복감...
자신이 만드는 책 한 권
이 모든 것들을 현실에서 손에 딱 쥐어 줄 실체가 바로 자신이 만드는 책 한 권이었습니다.
꿈에만 보던 파리의 에펠탑이나 디즈니랜드에 가서 퍼레이드를 즐기는 모습, 화성에 자유롭게 오갈 우주선을 날리고, 외로운 나를 손잡아 일으켜 춤출 수 있게 하기 전에 우리는 그 꿈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실패하진 않을까?
너무 어렵진 않을까?
아이들은 이 모든 가능성을 자신이 만들어 가는 책 한 권에 담습니다.
한 이야기에 무수한 고민과 생각들이 글과 그림에 보일 듯 말 듯, 마치 여행 가방 챙기듯이 쏟아 넣어 책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방 안에 불필요한 요소들을 빼고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보물들만 넣으며 보다 멋지고 새로운 여행을 꿈꾸게 됩니다.
스스로 깨닫고 알게 되는 거죠.
이번 여행엔 이런 건 필요 없어.
아무리 힘들어도 이것만은 꼭 가져가야 해.
아무래도 이건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질문 하는 사람
그럼 우리 어른들은 무얼 해야 할까요?
거창한 논리, 글을 써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을 열거하며 붙들어 놓을 순 없을 겁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좋은 질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른들의 글쓰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깊은 질문입니다.
내가 왜 이걸 쓰려고 하는가
나는 왜 이런 마음이 들고 왜 이렇게 느끼는가
나는 왜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나는 지금 무엇이 힘든가
등등 자신을 스스로를들여다보고 무의식에 깔린 나를 찾는 질문에서 글을 쓰게 되면, 후에 다시 읽어 보는 자기 글에서 식지 않는 감동과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스스로 그런 질문을 하라고 하기엔 어렵겠지요.
한 편에 짧은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 감정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으로, 모험을 떠난 이유를 잊지 않고 마지막까지 용기를 내어 임무를 완수하는 책을 한 번이라도 써 본 아이들은, 그 질문의 힘을 잘 알기에 제가 궁금해하는 것에 온 힘을 다해 답하려고 애를 씁니다.
바로 그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가의 모습이고 자신이라는 우주를 발견해가는 탐험가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여정을 함께 한 저를 아이들은 질문하는 사람으로 여기기보다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진실한 파트너로 받아들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