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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향기마을 Aug 26. 2022

빛나는 나의 오래된 미래

우리는 북아티스트



오늘은 무슨 책을 만들 거예요? 



어린 아티스트들을 만나는 일은 나의 습관적인 일상에 새로운 공기를 들이는 것과 같다. 


그들의 때 묻지 않은 표정은 막 시작된 가을바람처럼 맑은 기운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오늘 같은 만남은 이들을 맞이하는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급 선물이다. 


방학 동안 훌쩍 커버린 키만큼 나름대로 야물어진 눈빛으로, 새로운 책을 만든다는 설렘에 들뜬 얼굴을 하고서, 하나, 둘씩 나타나는 소년, 소녀들은 코로나 위험만 아니면 복도 끝에서부터 달려와 안길 태세다. 


그리고 첫마디... 오늘은 무슨 책을 만들 거예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말보다 가장 강력한 요구이고 당당한 발걸음의 시작이다. 


나는 낡은 마녀의 가방처럼 딱히 숨길 것도 없는 보따리를 풀어 종이를 접고 자르며 천천히 그리고 정성을 들여 낯선 항해의 시동을 건다. 어른들에겐 몇 번을 설명해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던 세계가, 그 짧은 순간에 전달이 되는 것은 나의 능력인지 그들의 특별함인지 몰라도 매번 신기할 따름이다.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어린 아티스트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평소 보이지 않던 진지한 생각을 불러일으켜 스스로 상상하는 시공간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드디어 쉴 새 없이 생각 상자들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저마다의 우주가 흘러 다닌다. 그 안에서 편안하게 유영하는 동안 나도 그 신비한 평형 세계를 들락거리며 손님처럼 구경하며 잠시 머문다. 






눈부신 진주가 박힌
이야기 한 조각을 발견하는 일



작은 고슴도치들의 세계를 창조하고 동화 속 앨리스가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든 책을 보는 이야기까지, 어쩌면 순간 스치고 말았을 온갖 잡동사니 생각들 속에 눈부신 진주가 박힌 이야기 한 조각을 발견하는 일은 모두 낙서처럼 끄적거려 놓은 그림과 몇 개의 단어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우린 어린 아티스트들의 생각이 걸어간 자리를 살피고 땀과 눈물이 흐르는 방향과 모기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미미한 파동을 언제든 알아챌 수 있도록, 들키지 않을 눈빛과 힘을 뺀 말랑한 손끝으로 조심스레 헤아려야 한다. 


나는 그들이 어른들이 바싹 말려 놓은 땅에서도 싹을 틔우는 기적을 보았으며 또한 그 늙어가는 어른들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부끄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욕심의 항아리에 사랑을 붓고 짜증과 기대를 푸른 볕에 널어 정화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본다. 






빛나는 나의 오래된 미래



우리의 어린 아티스트들이 스스로 자기 세계를 사랑하며 가꿀 수 있도록 현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기로 마음먹은 지 한참이다. 해서 내가 앞으로 선택하고 배우며 사서 하는 고생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 


스스로 가슴과 머리에 심는 생각 하나, 감성 한 줄이 모여 작가의 세계관이 형성되는 것은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 아티스트들이 지금 막 탐험을 시작한 자신만의 세계를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기 위해 다채로운 경험과 자유로운 상상을 요구하는 태도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리고 바로 한 인간이 하나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멋진 이유가 된다. 


오늘 시작된 각양각색의 세계 퍼레이드는 빛바랜 색으로 지쳐 있던 나에게, 자신들의 빛깔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앞으로 내가 설 자리를 분명히 비춰준다. 


나의 소명은 나의 소망과 같고 이제 시작하는 어린 아티스트들의 강렬한 설렘과도 같다. 


내가 최근에 깊이 뒤져 찾아낸, 빛나는 나의 오래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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