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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향기마을 Sep 04. 2022

휴식 같은 시간

기대하는 마음은 기다려주는 마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



최근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의 북아트 수업을 듣기 시작한 어린 아티스트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팝업북으로 완성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느라 시간 내내 매우 진지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신의 음색을 찾아 악기를 연주하려 애쓰는 음악가나 진정 원하는 빛깔로 마지막 붓 터치를 고민하는 화가들과 매우 흡사한 열기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내가 그들과 사랑에 빠지순간이다.





개미처럼


생각나는 이야기를 빨리 써 나가야 하는데 어떤 글자의 받침이 생각나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주저 없이 나에게 자신의 작업 중인 글 종이를 들이밀고 물어본다.


이때 나는 늘 대기 중인, 한글을 좀 아는 사람으로 언제든 그들의 물음에 빠르고 친절하게 소리를 낮춰 알려준다. 그들도 자존심이 있으므로, 그 글자만 잘 모르는 것처럼, 나는 딱 한 사람을 위한 대답을 위해 집중한다.


또 이야기에 맞는 장면으로 무엇을 그려야 할지 생각나지 않아도 수줍게 글 종이를 들고 오는 작은 손은 제법 당당하다. 이때도 기다렸다는 듯이 함께 이야기를 읽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황을 서로 맞추면서 이리저리 고민해준다.


만약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 나오는 것처럼 더듬이를 서로 맞대고 상상하는 것을 공유하며


이게 맞아?

이러면 어때?

이럴 수도 있지.

이게 더 낫네.


는 제법 비장한 미소 눈빛을 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고난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그 답을 찾기 위한 의미 있는 수다를 시작하면 이때는 모두 자신의 고민 인양 각자의 살아온 역량에 맞춰 나름 최선을 다한 답을 내놓는다.


이 시간이 어린 아티스트들이 제일 즐거워하는 굿 타임이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마법사가 되어 오늘 아침 타고 온 드래건에 대해 자랑도 하고 지난번에 먹은 초록색 초콜릿 알에 대해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개구리가 되었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아주 쉽게 커다래진 눈들은 손을 저어가며 절대 속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른 붉은 젤리를 권한다.

이 젤리는 나를 요정으로 변신시켜줄 것이라는데 믿을까 말까 하는 내 표정은 곧 그들의 즐거움이 된다.





휴식 같은 시간


이 흥겨운 한마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어린 아티스트들의 한 엄마는, 무척 궁금해하는 목소리로 그날 저녁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어땠어?라고 엄마가 아들에게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응 , 휴식같은 시간이었어~~

응? 휴식?


글쓰기와 창의력을 키워볼까.. 하고 보낸 북아트 수업 첫 시간을 다녀온 아들의 입에서 나온 그  휴식이라는 단어는 엄마 입장에서는 매우 기이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해석하려 해도 그 휴식 이리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엄마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기에 생각하다 못해 나를 찾았으리라.


휴식이라는 단어가 그려내는 머릿속 풍경은 배움의 현장과는 그렇게 거리가 멀었을까?

그 어린 아티스트가 휴식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글을 쓰는 마음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성인 작가나 어린 아티스트들이 크게 다를 바 없이 자신의 세계를 탐험하고 느끼며 가장 촉촉해진 손끝으로 집어 올린 반짝이는 그 무엇이다.


그게 정체가 무엇이든 내 안에서 발견한 내 것이기에 스스로 감동하고 쓰다듬으며 아끼는 마음이 담기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소중한 반짝임을 눈부신 햇살이든 우아한  달빛이든 걸어놓고 바라보는 시간에 진정 휴식 같은 행복을 맛보는 것이겠지.





기대하는 마음은 기다려 주는 마음


나는 내가 함께 한 어린 아티스트들에게 어떤 존재일지 아니, 어떤 존재로 비칠지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캄캄한 우주를 지나 내 곁에 떨어진 어느 유성이 자신이 태어난 어둠을 기억하고 불꽃이 피어나던 그 순간부터 만들어지고 있는 유일한 세계를 사랑하바랄 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대하며 기다리는 일을 사랑하는 나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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