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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향기마을 Dec 08. 2022

오로지 이해하기를

비웃거나 탄식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유일한 기회


코로나 이후 올 봄까지 초등학교에선 방과 후 공개 수업이 없었다.

올해 늦은 2학기 공개 수업은 몇 년 만이라 반갑기도 하고 기대가 됐다.

북아트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은, 정말 멋진 모습은 선생님이자 파트너인 나에게만 보여주고 정작 그들의 부모에게는 완성된 결과물만 내밀게 된다.

오롯이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에 엄마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적어도 작가의 모자를 쓰고 있는 동안에는


더구나 공개 수업을 찾아온 엄마들에게 그냥 보고만 있으라 하지 않고 내 아이와 함께 앉아 그들도 내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책 한 권 만들어 보도록 참여형 수업으로 진행하기에 만족도가 높다.

엄마나 아빠가 함께 오기도 하고 어떤 땐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나 삼촌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이런 일은 북아트 시간에만 일어나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우리 어린 아티스트들이 진지하게 고민을 하면서 빌드 업 해놓은 상상의 세계를 열어 그들의 가족을 맞아 당당하게 소개하는 시간이기에 더욱 그렇다.

또한 그동안 모든 노력이 끝난 후 보여준 책 한 권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나는 아이들의 부모가 한 명이라도 더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한다.


혹여 정말 시간을 낼 수 없는 부모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만약 올 수 없다 해도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대신 잘 챙기겠노라고 안심을 시킨다.

중요하지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아서인데 그래도 어떤 부모들은 내 아이만 엄마가 곁에 없으면 속상할까 봐 공개 수업 날 아예 아이를 보내지 않기도 한다.


사실 아이들은 처음엔 서운할 수도 있지만 막상 수업 시간엔 자기 이야기 세계에 빠져 새로운 생각들을 글과 그림으로 옮기느라 대부분 신경 쓰지 않는다.

적어도 작가의 모자를 쓰고 있는 동안에는.


다음 수업 때 와서 괜히 엄마 때문에 책을 못 만들게 되었다고 속상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디어 공개 수업 날이 되면 아이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교실로 달려와 이렇게 외친다.


- 우리 엄마 온대요. 오늘 무슨 책 만들 거예요?


- 우리 엄마 못 와요. 오늘 무슨 책 만들 거예요?






엄마의 표정에 담긴 불만을
속상한 아이의 눈이 바라본다.


이 아이들은 늘 나에게 당당하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기에 마음 놓고 본심을 드러낸다.

나는 미처 감추지 못한 반가운 표정으로 어린 아티스트들을 맞이한다.

화기애애한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면서 엄마와 아이는 책상을 붙여 나란히 앉고 혼자 온 아이들끼리 서로의 곁에 앉힌다.


드디어 오늘 만들 책 모형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나면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각자의 세계에 빠져 묘한 긴장감마저 감돌기 시작한다.

이 시간만큼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볼 수도 있고 평소 보지 못한 내 아이의 창조성 발현을 목격할 수도 있기에 나는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꼭 어느 한구석에서 불편한 기운이 감지된다.

엄마는 그림을 잘 못 그려서 책을 안 만들고 아이를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사실 이 아이는 나와 수업할 때에도 별 도움이 필요 없을 만큼 자신의 세계가 확고하다.


아니 대부분 아이들은 도움보다는 이야기 속 사건들의 해결 방법을 함께 고민해 주거나 질문만 이리저리 해주어도 신박한 아이디어로 어른들은 생각지 못할 결말을 만들어 낸다.

엄마는 남보다 내 아이가 한글도 모자라고 그림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불안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아이는 끊임없는 엄마의 잔소리에 짜증을 내고 모든 작업을 멈춘다. 혼자서 그렇게 잘하던 아이가 어째서 그럴까.


엄마의 표정에 담긴 불만을 속상한 아이의 눈이 바라본다.

굳어 버린 아이의 상상의 세계는 일찌감치 문을 닫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 꼭 다문 입술을 나는 억지로 열지 않고 다음 시간에 해도 된다고 안심시킨다.

그래도 이래저래 잘 마무리하며 나머지 커플들의 감사를 받고 성공적으로 수업을 마무리한다.






비웃거나 탄식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오로지 이해하기를...

-스피노자-



평소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의 예술적 열정을 실감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보며 감탄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모두가 돌아간 후 엄마들이 쓴 공개 수업 만족도 조사지에 아까 작업이 멈춘 아이의 엄마가 남긴 두 줄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내 아이의 의젓한 이야기 쓰는 모습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또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시간에 행복했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 두 줄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 잘 못하는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주면 좋겠어요.

- 잘하는 아이들만 챙기는 듯...


도대체 잘 못하는 아이는 누구를 이야기하는 걸까.

그 어린 아티스트는 정말 잘하는 아이인데? 아니 그 정도면 아주 잘하고 있는 건데?


자신들이 만들 이야기에 대한 권위를 스스로 부여하고 자긍심을 담아 책으로 생산하는 이 행위는 그야말로 예술이 아닌가.

자신이 상상한 것을 표현하고 스스로 깨달으며 느낀 것을 소중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만든 책은 어느 먼 시간 순수한 열정을 통과하고 이제야 두 손에 받아 든 반짝이는 별빛이다.


내 아이의 황당한 말이나 행동으로 당황스러울 수 있고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사실로 아이가 부끄러울 일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아이들이어도 마음 담은 글은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

어느 날 내 아이가 쓴 글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모든 걸 멈춘 채 귀 기울여 듣고 이렇게 예찬하면 될 일이다.


- 와... 이거 어떻게 했어?


그리고 어린 아티스트의 독자로 선택받은 우리는 기쁨의 춤을 추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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