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일기] 따뜻한 소고기 미역국

엄마 마음을 맛으로 표현하면 미역국 맛이 아닐까?

by B의취향

오늘은 엄마의 65번째 생신날이다. 거창한 음식은 아니어도 조촐하게 엄마의 생신을 기념하고 싶은 마음에 미역국에 도전했다. 생각해 보면 창피하게도 지금껏 내 손으로 미역국을 한번 끓여 드린 적이 없다. 매년 내 생일이면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해주셨다. 나를 낳느라 정작 고생한 건 엄마인데, 엄마 딸로 태어나 매해 건강하게 생일을 맞아준 게 고마워 자꾸만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곤 하셨다. 그렇게 키운 딸이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미역국 한 그릇인 셈이다. 퇴사하고 집에 있는 딸이 걱정스러울 법도 한데 한마디 잔소리도 하지 않는 우리 엄마. 아마도 엄마 마음을 맛으로 표현하면 미역국 맛이 아닐까 생각한다. 끓일수록 고소해지는 미역국, 크게 바라는 것 없이 간단한 재료지만 깊은 맛이 나는 미역국. 첫 미역국이지만 이런 마음을 담아낸다는 마음으로 한 끼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의 메뉴는 미역국


#1. 일단 미역을 물어 불린다. 자른 미역으로 준비했고, 물에 불리면 양이 워낙 뻥튀기처럼 많아져서 이만큼으로도 괜찮을까 싶은 양만 사용했다. 물에 불리면 금세 몸집을 키운다.


#2. 고기는 한우 국거리를 샀다. 엄마는 임플란트를 해서 육질이 두껍고 씹는 맛이 좋은 고기보다 얇고 부들한 고기를 선호하신다. 그래서 조금 얇게 썰어달라고 덧붙였다. 고기는 많을수록 좋고, 고소한 맛이 커질 것 같아서 듬뿍 넣었다.


#3. 고기와 미역이 준비되었으면 바로 끓이기를 시작하면 된다. 일단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냄비 바닥이 2/3 정도 채워지는 양을 넣었다!) 고기를 넣어 볶는다. 고기에서 붉은색이 사라지면 다진 마늘 한 숟가락과 미역을 넣어 함께 볶는다. 볶다가 소금과 후추를 살짝 넣고, 가루 형태의 포로 나온 시판 육수를 뿌렸다. 그리고 다시 달달달달 고소한 냄새가 퍼지도록 볶는다.


#4. 미역이 숨이 죽고 적당히 볶아졌으면 물을 넣고 끓이면 된다. 물을 냄비의 절반까지 넣고(미역이 잠겼지만 살짝 보일 정도) 센 불에 끓인다. 팔팔 끓으면 물을 조금 더 넣고(500ml 정도 넣은 것 같다), 국간장 2숟가락, 액젓 2숟가락, 소금 조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나는 엄마 취향을 반영해 혼다시도 조금 넣었다.


#5. 중불에 다시 한번 끓인다. 팔팔 끓으면 다진 마늘을 한 숟가락 더 넣고 조금 더 끓인다.


#6.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참기름 한 숟가락을 더 넣어주면 완성!


#7. 이제 엄마한테 뿌듯해하며 한 그릇 덜어 드리고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면 된다.


어쩐지 마음이 쓸쓸할 때면 미역국을 먹고 싶더라니...!


미역국을 엄청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날이 춥거나 몸이 으슬으슬할 때, 혹은 마음이 쓸쓸해서 흔히 표현하는 찬바람이 마음 구멍으로 오갈 때면 이상하게 따뜻한 소고기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직장 근처에(직장인 생활을 하면서 왜 나는 그렇게 마음 쓸쓸한 날들이 많았을까?) 미역국 맛집 하나 정도를 꼭 알아두곤 했다. 광화문에서는 오복미역(지금은 없어졌으려나?)과 대장금(황태 미역국인데도 진짜 국물 맛이 기가 막혔다). 여의도에서는 서청미역, 강남에서는 도곡의 효미역. 심지어 파주에서도 꼬막대신 미역국을 먹으로 심학산 아래 미꼬담을 가곤 했다. 이렇게 다 기억나는 거 보니 의외로 이곳들에서 꽤나 몸과 마음의 온기를 얻었구나 싶다.


앞으로도 미역국이 필요한 날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나이가 많이 들어 호호할머니가 되어도 엄마품을 찾듯, 마음 달랠 길 없는 날이면 미역국 한 그릇을 찾을 것 같다. 이 참에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을 온전히 터득해서 다행이다 싶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가 나를 위해 준비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덧붙이자면 첫 미역국은 대성공이었다. 엄마는 어쩐지 뭉클한 표정으로 다 크다 못해 이제는 늙어가는 딸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65년 만에 처음, 딸이 끓인 미역국을 먹으며 '우리 엄마'를 생각했다고 하셨다. 엄마의 엄마가 생각났다는 말을 들으며, 역시 미역국은 엄마 마음맛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훌쩍이느라 사진도 못찍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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