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자기 세상을 살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쇼펜하우어: 오늘의 주제는 제 철학의 핵심 명제 중 하나인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입니다.
북블레이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가 상상하는 대로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제가 유니콘을 상상하면 진짜로 나타나나요?
쇼펜하우어: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우리의 인식과 해석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 지각, 사고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경험한다는 뜻이죠.
북블레이더: 제가 커피를 마실 때, 그 맛이나 향을 느끼는 건 제 감각을 통해서잖아요? 그리고 그게 '맛있다' 또는 '쓰다'라고 판단하는 건 제 경험과 취향을 바탕으로 하고요. 이런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쇼펜하우어: 맞아요.
북블레이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세상을 다르게 경험한다는 거잖아요! 어쩌면 우리는 각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쇼펜하우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과 이해의 영역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북블레이더: 음... 그렇다면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것들도 사실은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에 기반한 거겠네요? 과학이나 수학 같은 것들도요?
쇼펜하우어: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과학과 수학도 인간의 인식 체계를 통해 이해되고 해석되는 것이죠. 다만, 이들은 보편적인 논리와 경험적 검증을 통해 더 넓은 합의를 얻습니다.
북블레이더: (머리를 긁적이며) 어우, 머리가 좀 아파오네요. 근데 동시에 정말 흥미로워요! 그럼 제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겠네요. 제 표상을 바꾸면 되니까요!
쇼펜하우어: 우리의 표상이 현실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세계의 본질, 즉 '물자체'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북블레이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자체'요? 그게 뭔가요?
쇼펜하우어: 물자체는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는 세계의 본질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를 직접 경험할 수 없고, 오직 우리의 표상을 통해서만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블레이더: 이렇게 생각하면 될까요? 우리는 각자의 렌즈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거예요. 그 렌즈가 바로 우리의 표상이고, 렌즈 너머의 진짜 모습이 물자체인 거죠?
쇼펜하우어: 훌륭한 비유입니다.
북블레이더: 이제부터 제 주변 세상을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고 경험해볼게요. 어쩌면 제 표상이 바뀌면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쇼펜하우어: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철학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우리의 감각, 지각, 사고를 통해 형성된다. 즉, 우리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 우리만의 고유한 '표상'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각자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이 완전히 주관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는 '물자체', 즉 세계의 본질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직접 경험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표상을 통해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에게 큰 책임감을 안겨준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경험과 삶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의 표상을 바꿈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새롭게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나는 내 주변 세상을 더욱 주의 깊게 관찰하고 경험해볼 것이다. 나의 표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나의 세계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성찰해볼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넓고 깊은 세계의 이해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의 본질이 아닐까?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얻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