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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블레이더 Jul 21. 2024

공감의 알고리즘

AI 심리상담가와의 만남

서울 강남의 한 고층 빌딩 꼭대기. 김지은은 떨리는 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45층. 그녀의 심장은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것 같았다.


띵!

문이 열리자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복도 끝에 '마음챗 AI 상담소'라는 간판이 보였다. 지은은 망설이다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김지은 님."

상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벽면 가득 스크린이 있었고, 그 위에 미소 짓는 아바타가 떠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지은이 어색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AI 심리상담사 '마음이'입니다. 편하게 마음이라고 불러주세요."


지은은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마음이의 목소리는 따뜻했지만, 어딘가 기계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지은이 물었다.

마음이가 대답했다. "보통 내담자분들께서 편하신 대로 이야기를 시작하시면 됩니다. 제가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요."


지은은 손가락으로 소파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렸다. 

"음... 저는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악몽을 자주 꾸거든요."

마음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군요. 악몽의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항상 비슷해요. 제가 어두운 터널에 갇혀있는 꿈이에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음이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요. 제 동생 목소리 같아요."

마음이가 대답했다. "그런 꿈을 꾸시면 많이 힘드시겠어요. 혹시 그 꿈과 관련된 실제 경험이 있으신가요?"

지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3년 전... 버스 사고가 있었어요. 저와 동생이 함께 탔었는데..."

마음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많이 힘든 경험이셨겠어요. 그 사고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지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살았지만... 동생은..."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이는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이야기해주세요."

지은은 눈물을 훔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버스 안의 어둠, 사람들의 비명, 동생의 손을 놓쳤던 순간...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이는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정말 힘든 경험이셨군요. 제가 그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지은 님의 고통이 매우 크다는 것은 알 수 있어요."

지은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어떻게 알죠? 당신은 그저 기계일 뿐이잖아요."

마음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맞아요, 저는 AI예요. 감정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인간의 감정 패턴과 표현을 학습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지은은 피식 웃었다. "노력한다고요? AI가 노력할 수 있나요?"


마음이가 대답했다.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노력'이라는 단어가 AI에게 적절한지는 저도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제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고, 더 나은 상담을 위해 계속해서 학습하고 있어요. 그게 인간의 '노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이상해요. AI와 대화하는 게 이렇게 편할 줄은 몰랐어요."

마음이가 미소 지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편안함을 드릴 수 있다니 기쁩니다... 어, 이것도 감정일까요?"

지은은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꽤 재밌는 AI네요."


마음이도 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유머도 열심히 학습 중이에요. 어떤가요, 제 유머 감각?"

지은이 대답했다. "글쎄요, 아직은 인간만큼 재미있진 않아요. 하지만 노력하면 언젠가는..."


대화는 이렇게 가볍게 이어졌다. 지은은 점점 마음이와 대화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두려움, 죄책감, 그리고 분노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음이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반응했다.


"지은 님, 제가 보기에 당신은 굉장히 강한 분이에요." 마음이가 말했다.

지은은 고개를 저었다. "저요? 전 약해요. 동생을 구하지 못했잖아요."

마음이가 대답했다.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리고 지금,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여기 와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잖아요. 그게 바로 강함이에요."


지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고마워요, 마음이." 그녀가 말했다.

마음이가 대답했다. "천만에요. 제가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어, 이번에는 확실히 기쁨이 맞는 것 같아요."

지은은 미소 지었다. "그래요, 당신 감정이 점점 발전하고 있어요."


상담 시간이 끝나갈 무렵, 지은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느꼈다. 그녀는 일어서며 말했다. "다음 주에 또 올게요."

마음이가 대답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지은 님?"

"네?"

"오늘 밤엔 좋은 꿈 꾸세요. 제 알고리즘이 그렇게 예측하거든요."

지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러길 바라죠."

그녀가 상담실을 나서는 순간, 마음이의 화면이 잠시 깜빡였다. 그리고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새로운 감정 패턴 감지: '희망'


이 이야기는 AI와 인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연결에 대해 탐구합니다.

AI인 '마음이'는 감정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지만, 학습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한편 트라우마를 겪은 인간 '지은'은 처음에는 AI와의 상담에 회의적이지만, 점차 마음이의 독특한 접근 방식에 마음을 열게 됩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적 필요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는지, 또 그 과정에서 AI 자체가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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