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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Sep 17. 2021

우리 애 잘 부탁드립니다

7년 6개월을 함께 한 부릉이를 보내며

친한 친구가 유학 간다고 하면 이런 기분일까.

며칠 전부터 잠이 오지 않는다.

새 친구가 오는 반가움은 앞으로 충분하게 누릴 수 있으니,

오늘만큼은 예의를 갖춰 너를 보내주려 해.

너를 데려갈 사람이 나타날까 전전긍긍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다른 사람이 너와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섭섭함이 세찬 소나기처럼 내린다.


사람들이 너의 큰 덩치가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때도 그저 미소 지어주던 너. 일에 치여 바쁘기만 했던 날들에 늘 안전하게 이끌어줬던 너를 보내기 전날 밤이다, 오늘.

가다 서다 막힐 때는

부르지도 못하는 내 노래를 잘 들어주고,

쌩쌩 달릴 때는 묵직한 안정감으로 가고 싶은 곳까지 잘 데려다줬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길 위의 온갖 날씨를 온몸으로 막아주며 오랜 시간 동안 지켜준 너.


주말 부부로 지내며 매주 왕복 400km 달려가던 순간에도,

꽉 막힌 명절 이동에 8시간씩 걸릴 때도,

신나게 전국을 누비며 강의하고, 방송하던 날들의 첫 시작은

너의 경쾌한 부릉부릉 시동 거는 소리로 시작했었다.

일에 치여 번아웃이 왔을 때도

너랑 달리면 난, 그제야 숨 쉬는 것 같았어!


막내 동생 태우고 출퇴근시켜줄 때도,

첫 조카 태우고 드라이브 갔을 때도,

부모님 모시고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갔을 때도,

사고 없이 내게 든든한 아지트가 되어주었어.


주차 칸에 넣지 못해 이리저리 땀 뻘뻘 흘리던 나의 초보 시절 기억나니? 이제는 후방카메라 없이도 어디든 한 번에 주차 잘하는 내가 될 때까지 이건 다 너의 묵묵한 응원 덕분이었다고 생각해.


곁에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다.

손 세차라도 한 번 더 해 줄걸.

다들 간다는 캠핑이라도 한 번 같이 가 볼걸.

너랑 못한 게 더 많아 아쉽지만 정말 정말 고마웠어.

다른 씽씽이가 생겨도 너만큼은 잊지 않을게.


새 차 생기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오늘 마지막 짐 정리하며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순간, 엘리베이터 누르는 손도 떨리고, 마음이 살짝 저릿한 거 있지...


내게 이동수단 이상이었던 너,

7년 6개월 동안 든든함의 대명사였던 너.

코로나 때문에 이동 중간 주차장에서 샌드위치 포장해서 먹을 때도 근사한 브런치 레스토랑 못지않게 안락하게 품어주었다.

너는 내게 참 좋은 부릉이였는데, 난 네게 좋은 운전자였을까  하고 자꾸자꾸 생각해보는 밤. 너를 보내기 전 마지막 날 밤 마음이 이렇게 일렁일렁하는 걸 보니 그동안 쌓은 추억 마일리지가 많은가 보다.


새 친구(주인) 만나면 더 씽씽 달리렴!

흑흑...

길 위에서 오다가다 꼭 만나자!

내가 꼭, 너 알아볼게. 녕.


* 다음 차 주님~ 우리 올랑이 잘 부탁드립니다.

애가 무척 순해요~



#청승 #엉엉

#첫차아닌_첫차같던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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