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것을 쓰기 시작한 지 이럭저럭 6, 7년이 되었다. 하지만 글다운 글을 써 본 일이 단 한 번도 없고, 남 앞에 글을 내놓을 때마다 양심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살면서 스스로 느낀 점이나 직관보다는 다른 이의 청(請, 부탁)에 못 이긴 나머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쓴 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실로 글을 썼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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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일이 점점 다가오면 그제야 펜을 잡는다. 사실 몇 안 되는 글 쓰는 이 가운데 나 한 사람의 창작이면 창작, 감상문이면 감상문을 바라고 믿는 잡지 경영자의 조급한 생각을 모르면 모르거니와 알고 나서는 그대로 있지 못할 일이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펜을 잡는다.
나는 이를 하나의 모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마치 지리학자나 탐험가가 약간의 모험심과 상상만을 가지고 미지의 길을 떠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 시작한 첫 구절, 그 뒤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써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거기에 또 얼마나 불충실함과 무성의함, 철저하지 못함이 있을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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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처럼 창작생활이 계속된다면, 나는 그 창작이라는 것을 내버려서라도 양심의 부끄러움을 잊고 싶다. 더욱이 안으로는 가정, 밖으로는 사회와 같이 내 마음대로 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데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리 든든하고 풍부한 천품(天稟, 타고난 기품)을 타고 태어나지 못한 나로서는 무엇을 깨닫고, 느끼고, 사색하는 것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펜을 잡는다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아직 수양해야 할 내게 어떤 요구를 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만큼 무리한 일이 없을 것이요, 나 자신이 창작가나 문인을 자처한다면 그것만큼 건방진 소리가 없을 것이다.
어떻든, 무엇을 쓴다는 것이 죄악 같을 뿐이다.
─ 나도향 <쓴다는 것이 죄악 같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