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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Aug 05. 2020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의대를 중퇴한 이 남자




본명 ‘경손’과 의학 공부를 포기했던 나도향


소설가 채만식은 학창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했는데, 훗날 폐병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때 그는 자기 양복을 팔라고 유언을 남기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겨울 양복을 팔아 마이신을 맞을까 생각했는데, 그때 양복을 팔았더라면 지금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는 한의사, 아버지는 양의사였던 나도향은 할아버지의 권유로 경성의전에 진학했지만, 문학을 하겠다며 일 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만다. 집안 어른들의 강력한 바람도 가슴 속 열망을 지우지는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나도향은 집안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매우 싫어했다. 사실 그의 본명 경손경사스러운 손자라는 뜻으로, 그의 할아버지가 직접 짓은 것이었다. 그 때문에 할아버지 중심적인 그 이름을 매우 싫어해서 경손이라는 이름 대신 도향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보건대, 나도향은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에 대한 저항으로 이름과 의학 공부를 저버린 것으로 보인다.

의대 중퇴 후 이상화,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여하며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한 나도향은 천재 작가로 불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1926년 8월 26일 폐결핵이 악화되어 짧은 삶을 마감하고 만다.  



▲ 배재고등보통학교 시절의 나도향



◆ 문학 천재에게도 힘들었던 창작의 고통


눈길을 끄는 제목, 눈에 띄고 예쁜 표지 디자인, 그리고 깔끔하게 인쇄된 활자….  


우리가 접하는 책은 대부분 이런 모습이다. 우리는 보기 좋게 정돈된 한 권의 책 속에서 작가가 이룩한 흥미진진한 문장과 무궁한 상상력의 바다에 푹 빠진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이 출간되기까지 작가가 느꼈을 고민과 번뇌를 생각해본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솔직히 말하건대, 그건 상상 이상의 고통일 수도 있다.

그것은 글쓰기 대가라고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고, 그로 인해 많은 독자에게 영감을 준 그들이건만, 그들 역시 글쓰기를 하염없이 어려워하고 힘들어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글을 쓴다는 것’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 했다.

천재 작가로 불렸던 나도향 역시 창작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쓴다는 것이 죄악 같다> 에서 “무엇을 쓴다는 것이 죄악 같다”라며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문학 천재로 인정받았음에도 자신의 글을 부끄러워하고, 독자에게 미안함을 느낀 셈이다. 글쓰기 대가다운 풍모가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 나도향의 대표작인 <벙어리 삼룡이>의 영화 속 한 장면. ‘백조(白潮)’ 동인으로 문학생활을 시작한 그는 낭만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주로 썼다.




글이란 것을 쓰기 시작한 지 이럭저럭 6, 7년이 되었다. 하지만 글다운 글을 써 본 일이 단 한 번도 없고, 남 앞에 글을 내놓을 때마다 양심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살면서 스스로 느낀 점이나 직관보다는 다른 이의 청(請, 부탁)에 못 이긴 나머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쓴 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실로 글을 썼다고 할 수 없다.  

… (중략) …

원고 마감일이 점점 다가오면 그제야 펜을 잡는다. 사실 몇 안 되는 글 쓰는 이 가운데 나 한 사람의 창작이면 창작, 감상문이면 감상문을 바라고 믿는 잡지 경영자의 조급한 생각을 모르면 모르거니와 알고 나서는 그대로 있지 못할 일이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펜을 잡는다.  

나는 이를 하나의 모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마치 지리학자나 탐험가가 약간의 모험심과 상상만을 가지고 미지의 길을 떠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 시작한 첫 구절, 그 뒤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써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거기에 또 얼마나 불충실함과 무성의함, 철저하지 못함이 있을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 (중략) …

만일 이처럼 창작생활이 계속된다면, 나는 그 창작이라는 것을 내버려서라도 양심의 부끄러움을 잊고 싶다. 더욱이 안으로는 가정, 밖으로는 사회와 같이 내 마음대로 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데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리 든든하고 풍부한 천품(天稟, 타고난 기품)을 타고 태어나지 못한 나로서는 무엇을 깨닫고, 느끼고, 사색하는 것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펜을 잡는다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아직 수양해야 할 내게 어떤 요구를 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만큼 무리한 일이 없을 것이요, 나 자신이 창작가나 문인을 자처한다면 그것만큼 건방진 소리가 없을 것이다.

어떻든, 무엇을 쓴다는 것이 죄악 같을 뿐이다.

─ 나도향 <쓴다는 것이 죄악 같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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