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테호른 Aug 10. 2020

“내생에는 글쓰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라고 했던 소설가

 



◆ ‘조선의 체 호프’라고 불렸던 단편소설의 대가, 현진건


우리에게는 소설 <운수 좋은 날>로 익숙한 소설가 현진건은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한 문학가이자, 올곧은 언론인이었다. 특히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손기정 사진의 일장기를 지워 보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일 년 동안 옥고를 치뤄야 했을 뿐만 아니라 신문사에서도 쫓겨나 한동안 돼지와 닭을 키우면서 살아야 했다.  


현진건은 당대의 작가들로부터 ‘조선의 체 호프’라는 말을 들을 만큼 뛰어난 문장력을 지녔던 단편소설의 대가였다. 그와 관련해서 많은 에피소드가 전한다. 그중 그의 작품 <빈처>와 관련된 것이 있다.  

그의 처가는 경주에서 알아주는 부호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집이 매우 가난해서 처가에서 보내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친정에 간 아내가 구박을 받고 처남댁이 부자 행세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여 주인공이 분노한다는 <빈처>는 바로 그의 아내를 모티브로 쓴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현진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운수 좋은 날>이다. 특히 이 작품은 하층민인 인력거꾼 김 첨지의 하루를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식민지 조선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설렁탕만은 잊지 않고 사 들고, 집으로 들어섰더니, 아내의 쿨럭쿨럭하는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사이에 아내는 죽어 있고, 젖 먹이는 빈 젖꼭지만 빨고 있었다. 김 첨지는 넋을 잃고,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 대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현진건, <운수 좋은 날> 중에서


이렇듯 현진건의 글은 아이러니한 설정을 통해 독자의 허를 찌른다. 그러다 보니 언제 읽어도 눈물샘을 자극한다.  



▲ 소설가 현진건. 현진건은 당대의 작가들로부터 ‘조선의 체 호프’라는 말을 들을 만큼 뛰어난 문장력을 지녔던 단편소설의 대가였다.



◆ “다음 생에는 글쓰는 사람이 절대 되지 않겠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를 겁내고 어려워한다. 심지어 두렵다는 이 또한 적지 않다. 그렇다면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는 문인들은 과연 어떨까. 그들 역시 글쓰기가 어렵고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다만, 그들은 글쓰기 자체보다는 상상력과 철학, 글재주가 부족한 데서 오는 자신의 글 실력을 매우 부끄러워했다. 

글쓰기가 어렵고, 힘든 것은 단편소설의 대가로 불렸던 현진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수필 <설 때의 유쾌함과 낳을 때의 고통>에서 글쓰기의 어려움에 관해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펜을 들고 원고를 대하기가 무시무시할 지경이다. … (중략) … 무딘 붓끝으로 말미암아 지긋지긋한 번민과 고뇌가 뒷덜미를 움켜잡는다.”


글을 쓴다는 것, 작가로 산다는 것은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동반한다.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오죽하면 “다음 생에는 글쓰는 사람이 절대 되지 않겠다”라고 했을까.






작품의 아기가 설 때처럼 유쾌한 일은 없다. 그 거룩한 맛, 기쁜 맛이란 하늘을 줘도 바꾸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큰 땅덩어리를 줘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밥을 먹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또는 눈을 딱 감고 누웠을 때나, 나의 환상 속에서 뛰어나오는 갖가지 인물들이 각각 다른 성격으로 울며, 웃으며, 구르며, 한숨지으며, 속살거리며, 부르짖으며, 내 머릿속 무대에서 선무(旋舞, 빙빙 돌며 추는 춤)를 출 때며, 관현악을 아뢸 때,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저 취하며, 그저 유쾌하다. 더구나 그들이 제멋대로 제 성격에 맞거나 배경을 찾아 형형색색으로 발전해 나가는 광경 ─ 혹은 비장, 혹은 처참, 부슬부슬 뿌리는 봄비처럼 유한(幽閑, 조용함)하게, 푹푹 까치놀(석양을 받은 먼 바다의 수평선에서 번득거리는 노을) 치는 바다처럼 강렬하게, 백금의 햇발이 번뜩이는 듯, 그믐밤에 비바람이 몰리는 듯…. 갖가지 정경이 서로 얽히고설킬 때 이보다 더한 감흥이 어디 있으랴. 이른바 법열(法悅,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와 같은 묘미와 쾌감)이란 이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낳을 때의 고통이란! 그야말로 뼈가 깎이는 일이요, 살이 내리는 일이다. 펜을 들고 원고지를 대하기가 무시무시할 지경이다. 한 자를 쓰고 한 줄을 긁적거려 놓으면 벌써 상상할 때의 유쾌함과 희열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뜻대로 그려지지 않는 무딘 붓끝으로 말미암아 지긋지긋한 번민과 고뇌가 뒷덜미를 움켜잡는다. ‘피를 뿜는 듯한 느낌’이란 아마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한껏 긴장된 머리와 신경은 말 한마디가 비위에 거슬려도 더럭더럭 부아가 나서 견딜 수 없다. 몇 번이나 쓰던 것을 찢어 버리고 나의 천품이 너무나 보잘것없고 하잘것없는 것을 한탄하는지 모르리라. 이를 두고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내생막작여인신(來生莫作女人身, ‘내생에는 여인으로 태어나지 마라’는 뜻)”이라고 하였지만, 나야말로 “다음 생에는 제발 글 쓰는 사람이 되지 말지다”하고 기도라도 올리고 싶다. 

 … (중략) …

이렇게 한 편을 만들어놓고, 한 번 읽어보면 뜻대로 아니 된 구절에 눈썹을 잠시 찡그리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만족감이 가슴에 흘러넘친다. 어떤 분은 다 지어놓은 작품을 뜯어버리기도 한다지만, 나는 한번 완성한 것을 없앨 생각은 꿈에도 없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모두 귀여운 내 자식이기 때문이다. 이에 구구절절이 읽고 또 읽다 보면 감격에 겨운 눈물이 두 뺨을 적실 때도 있었다. 그 눈물 맛이야말로 달기 그지없다! 거룩하기 그지없다! 

─ 현진건, <설 때의 유쾌함과 낳을 때의 고통>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평생 가는 ‘진정한 친구’를 얻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