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테호른 Aug 25. 2020

역사가 사마천을 ‘승자’로 기록한 이유




▲ 사마천 동상. 그는  아버지의 유훈을 잇기 위해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오만 군상의 인간상을 담은 130편의 책을 완성했다. 그것이 바로 중국 최고의 역사서 《사기》다.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 속에서도 살아남아야만 했던 이유


사마천은 마흔여덟에 한 무제 앞에서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끔찍한 궁형을 당했다. 당시 궁형은 가장 치욕스러운 형벌로 여겼기에 궁형을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마천이라고 해서 그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궁형을 받는 치욕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았다.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태사관이었던 그의 아버지 사마담(司馬淡)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훈을 남겼다.


우리 선조는 주 왕실의 태사로서 아주 먼 옛날 순(舜) 시대와 하(夏)로부터 천문을 관장해 공명이 빛났다. 그 후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는데, 결국 내 대에서 끊어지려나 보다. 만일 내가 죽거든 너는 반드시 태사가 되어 조상의 일을 이어다오. 나는 태사로 있으면서도 현군과 충신들의 행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천하의 역사와 문장이 잊힐 것만 같아 심히 두렵다. 그러니 네가 반드시 내 뜻을 이어다오.


사실 그는 마흔둘에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저술 활동은 하지 못했다. 태사령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궁형 때문이었다. 그는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14년 동안 각국의 기록을 모아 흥망성쇠의 이치를 정리하고, 오만 군상의 인간상을 담은 130편의 《태사공서(太史公書)》를 완성했다. 그것이 바로 중국 최고의 역사서 《사기》다.  

하지만 궁형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상처는 너무도 컸다. 여름이면 냄새 때문에 가족조차 그를 멀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친구 임안(任安)에게 편지를 보내 가슴 저미는 심정을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백 세의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이 쓰라린 치욕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아홉 번 장이 뒤집히고, 망연자실하여 무엇을 잃은 듯하며, 길을 걷고 있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다.  

― 〈보임안서(報任安書)〉 중에서


만일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견디지 못한 채 목숨을 끊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사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이름 역시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사무친 원통함은 그저 개인의 한으로만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생전에 사마천은 한 치의 명예도 얻지 못했다. 죽은 뒤에야 비로소 그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사마천을 패자가 아닌 승자로 기록하고 있다. 온갖 고통과 좌절을 이겨내고 ‘인간사의 보고’라고 불리는 역작 《사기》를 남겼기 때문이다.



▲ 역사는 온갖 고통과 좌절을 이겨내고 ‘인간사의 보고’라고 불리는 역작 《사기》를 남긴 사마천을 패자가 아닌 승자로 기록하고 있다. ⓒ 자료 사진 출처 ─ chinese wiki



◆ 상옥추제, 죽을 각오로 싸워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


《손자병법》 삼십육계 전략의 제28계는 ‘상옥추제(上屋抽梯)’로 ‘지붕으로 유인한 후 사다리를 치운다’라는 뜻이다. 이는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을 때 일부러 위기를 만들어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하는 계략이다. 형주(荆州, 지금의 후베이성 일대)자사 유표(劉表)의 아들 유기(劉琦)가 제갈량을 유인해 높은 누각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 자신의 의도를 관철한 고사에서 유래했다.

생각건대, 사마천 역시 궁극의 상황에 빠지게 한 후 빠져나갈 구멍을 없앴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전략을 구사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살다 보면 전력으로 뛰다가도 어느 한순간 긴장이 풀리고 느슨해져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고, 상대가 너무 강해 보여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모든 힘을 한곳으로 모으는 상옥추제의 승부수이다. 대안이 없을수록 그것에 악착같이 매달리며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조롭고 잘 나갈 때, 아무런 걱정이 없을 때, 일에 지쳐 긴장감이 떨어질 때일수록 오히려 상옥추제 계략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만 막상 그런 일에 부딪쳤을 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 계략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퇴로를 없애버렸다는 점에서 결사 항전하지 않으면 필패하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더의 지략이야말로 상옥추제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만용은 한 사람의 실패로 끝나지만, 리더의 만용은 조직은 물론 조직원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다. 이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거나, 황하를 걸어서 건너는 것과 같은 헛된 죽음을 후회하지 않을 자와는 나는 행동을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옥추제 계략은 죽기 위한 것이 아닌 죽을 각오로 싸워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닉 부이치치가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