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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Sep 04. 2020

체면 때문에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말라


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이 376명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꼽게 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 대부분은 평소 이상적으로 그리던 사람의 만남과 사랑을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및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시련을 ‘최악의 순간’으로 기억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대부분 사람은 개인적인 목표와 일, 취미, 학업 등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인생 최고의 순간 및 최악의 순간은 그것들과는 거리가 먼 다른 이들과 교감하면서 느끼는 감정’임을 밝혀냈다. 즉, 우리 인생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은 ‘사건’이 아닌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 ‘어떤 일이 있었냐’보다는 ‘그 순간을 누구와 함께했느냐’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인생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은 ‘사건’이 아닌 ‘사람’과 관련돼 있다. ‘어떤 일이 있었냐’보다는 ‘그 순간을 누구와 함께했느냐’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체면 때문에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말라


우리 기억 속의 인생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에는 항상  ‘사건’이나  ‘일’이 아닌 ‘사람’이 있다. ‘어떤 일’보다는 ‘그 순간을 누구와 함께했느냐’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깊이 간직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너무도 쉽게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저버리곤 한다. 그 이유란  것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고작 자기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자기 체면 때문에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을 버젓이 행하는 셈이다.

많은 사람이 아이들로 인해 인간관계를 맺곤 한다. 주목할 점은 유독 자기 아이에게만 냉정한 엄마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런 엄마들 중에는 낯선 이웃 앞에서 수줍어하며 뒤로 숨는 아이를 다그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집 아이가 인사를 안 하거나 실수하면 “괜찮아, 괜찮아. 부끄러워서 그러는구나!”라며 너그럽게 넘어가면서도 말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웃 앞에서 자신의 체면 유지를 위해 아이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낯선 사람이 많은 곳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존재인 엄마에게 냉정하게 거부당한 아이는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려다가 엄마와 아이 사이의 애착 관계가 무너지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뿐만 아니라 둘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남는다.  



▲ 구겨진 체면을 세워주는 것은 더 나은 성과이지 내 탓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남 탓을 하는 순간, 그는 무능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 Unsplash  



자기 체면을 위해서, 또는 순간의 난처함을 모면하기 위해서 동료를 비난하거나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사람을 질책하고 외면하는 일은 직장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지난 분기 매출 달성에 기뻐하며 “우리는 평생 함께해야 할 팀”이라고 외치던 팀장이 이번 분기 성과가 저조하다며 다그치는 상무 앞에서 안면을 확 바꾸며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대충 뭉갤 생각하지 말고 죽기 살기로 덤비라고 했잖아. 요즘 다들 왜 그래?”라며 팀원들을 몰아세운다고 해보자. 

상사 앞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그러나 자신의 구겨진 체면을 세워주는 것은 더 나은 성과이지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상사와 팀원 모두에게 무능한 사람이 되고 만다. 

 


▲ 자기 체면을 위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마라.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사람이 느낄 실망과 상처와 비교하면 그것을 통해 얻는 자기 위안은 너무도 보잘것없다.



◆ 자기 체면 유지를 위해 남 탓을 하는 것은 관계 파탄의 지름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은 ‘남 탓하기’다. ‘내 탓이오’라고 하면 자신의 무능함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자책이 심해지면 깊은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내 탓’이 아닌 ‘남 탓’을 한다. 마치 “나는 아이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좋은 엄마예요”라는 위안을 얻기 위해 아이의 상처를 외면하는 엄마처럼 말이다.  

단지, 자기 체면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 혹은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마라.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사람이 느낄 실망과 상처와 비교하면 그것을 통해 얻는 자기 위안은 너무도 보잘것없고,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일시적인 자기 체면 유지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사람을 탓하는 일은 관계를 파탄내는 지름길
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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