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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Sep 10. 2020

이상이 한 여자를 두고 친구와 벌인 ‘삼각관계 스캔들’


 한 남자가 자살소동을 벌인다. 다행히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그것을 지켜본 친구는 깊은 시름에 잠긴다. 자실소동을 벌인 원인이 자신의 애인을 남몰래 연모한 데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버려야 할지, 아니면 애인을 포기해야 할지 남자는 잠시 갈등한다. 하지만 곧 유쾌하게 웃으며 친구의 손을 잡는다.  

90여 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연애사건이다. 그것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작가와 관련된 이야기다. 작가, 이상이 바로 그 주인공이며, 그 친구는 소설가 정인택이다. 이에 문단에서는 한동안 두 사람의 ‘삼각관계 스캔들’과 관련 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 이상, 정인택, 박태원과 권영희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연극 <깃븐 우리 젊믄날>의 한 장면.



◆ 한 여인을 사랑했던 이상, 박태원, 정인택 


이상과 소설가 박태원(봉준호 영화감독의 외조부), 정인택의 우정은 너무도 유명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지만, 식민지 출신의 가난한 글쟁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낮에는 극장을 찾아가 영화 속에 그려진 서양을 동경하고, 밤에는 옷을 전당포에 잡혀가면서 술을 마시는 일상을 반복했다. 

세 사람은 한 여인을 사랑했다정확하게 말하면, 이상과 사귀던 여성을 본 정인택이 그녀에게 반한 나머지 상사병에 빠졌다. 이상이 운영하던 찻집에서 일하던 권영희라는 여성이었다. 

권영희는 처음에는 이상과 애인 관계였지만, 정인택이 너무 연모한 나머지 자살 소동을 벌이자, 이상과 헤어진 후 그와 결혼식을 올린다. 놀라운 것은 그때 이상이 보인 모습이다. 이상은 옛 애인과 친구를 버리는 대신 두 사람의 결혼식 사회를 보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 후 이상이 일본에서 돌연 사망하자, 박태원과 정인택은 월북을 택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정인택이 죽자, 권영희는 박태원과 재혼한다.  



▲ 정인택과 권영희의 결혼식 사진. 앞줄 중간의 남녀가 정인택과 권영희. 뒷줄에 표시한 두 남자가 이상과 박태원.



◆ 이상의 이름에 얽힌 재미 있는 이야기


이상과 박태원, 정인택의 우정은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을까.

스물넷의 문학청년 이상은 요양차 갔던 황해도의 한 온천에서 금홍이라는 여인을 만나 함께 서울로 온다. 그리고 얼마 후 종로에 <제비>라는 다방을 연다. 이곳에 당시 우리 문단을 주름잡던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등이 출입하면서 이상과 문단 인사들의 교우(交友, 벗을 사귐)가 시작된다. 그의 대표작 <날개>와 <오감도> 역시 그곳에 있는 골방에서 써졌다. 하지만 <제비>는 2년여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그의 유일한 탈출구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이상에게 있었다.

이상은 매우 게을렀다. 기실, 그것이 <제비>가 묻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박태원의 말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의 가난은 이렇게 그의 허약한 체질과 수년 째 이어져 온 절제 없는 생활이 가져온 불(不)건강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실 그의 철저한 게으름을 들어 논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집주인이 점방을 내어달라고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을 때도 오전 9시에 대어 일어나는 재주가 없어 가장 불리한 결석판결을 받고 말았으니 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박태원이 결혼할 때 이상이 방명록에 적은 글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한다.    


“면회거절 반대! 결혼은 즉, 만화(慢畵)임이 틀림없고, 만화의 실연(實演)임이 틀림없다. 만화 실연의 진지미(眞摯味, 마음 쓰는 태도나 행동 따위가 참되고 착실함)는 또다시 만화로 윤회한다.”


특이한 것은 이날 이상이 이름을 ‘以上’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독특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생각건대, 그때 이상은 이름이 아닌 말을 끝내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以上’을 이름 대신 썼던 것이리라. 그런데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름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 이상이 소설가 박태원의 결혼식 방명록에 남긴 친필 메시지. ‘以上’이라고 적은 것이 눈에 띈다.


알다시피, 이상은 시대를 앞서 간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현실에 대해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런 이상이 돌연 죽자, 박태원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이상의 편모> 가 바로 그것으로, 박태원은 이 글에서 ‘이상이 없는 서울은 무척 쓸쓸하다’라며 소중한 벗을 잃은 슬픔을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 나이를 떠나서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던 세 사람. 왼쪽부터 정인택, 박태원, 이상.




내가 李箱을 안 것은 그가 아직 다료(茶寮, 다방) <제비>를 경영하고 있었을 때다. 나는 누구한테서인가 그가 고공 건축과(지금의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이란 말을 들었다. 나는 상식적인 의자나 탁자에 비해 그 높이가 절반밖에는 안 되는 기형적인 의자에 앉아 가게 안을 둘러보는 그를 ‘괴팍한 사나이’다 라고 생각하였다. 

<제비> 해멀 쓱 한 벽에는 십 호 인물형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나는 누구에겐가 그것이 그 집주인의 자화상임을 듣고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황색계통의 색채는 지나치게 남용되어 전 화면이 오직 누─런 것이 몹시 음울하였다. 나는 그를 ‘얼치기 화가로군’하였다. 

다음에 또 누구한테서인가 그가 시인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나 무슨 소린지 한마디 알 수 없지…” 

나는 그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시가 보고 싶었다. 이상은 방으로 들어가 건축잡지를 두어 권 들고 나와 몇 수의 시를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쉬르레알리슴(Surrealism, 초현실주의)’에 흥미를 갖고 있지는 않았으나, 그의 ‘운동’ 1편은 그 자리에서 구미가 당겼다. 지금 그 첫 두 머리 한 토막이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것은  

1층 우에 2층 우에 3층 우에 옥상정원에를 올라가서 남쪽을 보아도 아무것도 없고 북쪽을 보아도 아무것도 없기에 다시 옥상정원 아래 3층 아래 2층 아래 1층으로 내려와… 

로 시작되는 시였다. 

나는 그와 몇 번을 거듭 만나는 사이 차차 그의 재주와 교양에 경의를 표하게 되고, 그의 독특한 화술과 표정과 제스처는 내게 적지 않은 기쁨을 주었다.

… (중략) … 

이상은 사람과 때와 경우에 따라 마치 카멜레온과 같이 변한다. 그것은 천성보다도 환경에 의한 것이다. 그의 교우권(交友圈, 교제 범위)이라 할 것은 제법 넓은 것이어서, 물론 그 친소(親疎, 친밀함과 소원함)와 심천(深淺, 깊음과 얕음)의 정도는 다르지만, 한번 거리에 나설 때마다 거의 온갖 계급의 사람과 아는 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그는 ‘하울(夏鬱)’이라는 그러한 몽롱한 것 말고 희로애락과 같은 일체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에 어느 틈엔가 익숙하여졌다. 나는 이 앞에서 변태적이라는 문자를 사용하였거니와 그것은 이상에게 있어서는 그 문자가 흔히 갖는 그러한 단순한 것이 아니고 좀 더 그 성질이 불순한─ ? ─것이었다. 가령, 그는 온건한 상식인 앞에서 기탄없이 그 독특한 화술로써 일반 선량한 시민으로서는 규지(窺知, 엿보아 앎)할 수 없는 세계의 비밀을 폭로한다.  

… (중략) … 

이제 와서 그런 것을 새삼스레 문제 삼아 무엇 하랴. 이상은 인제 영구히 돌아오지 않고, 이상이 없는 서울은 너무나 쓸쓸하다.   

ㅡ 박태원, <이상의 편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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