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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용철이 여동생 박봉자에게 쓴 편지

by 마테호른




김유정 박봉자.JPG ▲ 1936년 잡지 《여성》 5월호에 ‘어떠한 남편, 어떠한 부인을 맞이할까’라는 제목으로 나란히 실린 김유정과 박봉자의 글. ⓒ 사진 출처 추후 공개


◆ 김유정이 짝사랑했던 시인 박용철의 여동생, 박봉자


1936년 잡지 《여성》 5월호에 ‘어떠한 남편, 어떠한 부인을 맞이할까’라는 제목으로 남녀의 글이 나란히 실렸다. 이후 남자는 같은 잡지에 글이 실렸다는 이유만으로 여자에게 30여 통의 절절한 연서(戀書)를 일방적으로 보낸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편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동생에게 오는 편지를 발견한 그녀의 오빠가 그것을 한동안 감췄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당시 문단에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가들이 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김유정, 여자는 박봉자(당시 이화여전 재학), 그리고 여자의 오빠는 시인 박용철이다. 만일 박용철이 중간에서 편지를 가로채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김유정이 그렇게도 원하던 사랑이 이루어졌을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박용철이 항상 음울하고, 병약한 김유정을 못미더워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시 김유정은 좋아하는 여자들을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요주의 인물이었으니, 어느 오빠가 그런 사람과 여동생이 만나는 것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 훗날, 박봉자는 그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김유정의 편지는 30여 통 받았다. 오빠의 손에 의해 먼저 피봉이 찢긴 다음 내가 읽었다. 지금 여성들은 다르겠지만 당시는 아무리 신여성이라 하더라도 김유정 같은 뜨거운 구애에는 침묵을 지킬 도리밖에 더 있었겠는가?

ㅡ 박봉자, 1974년 문학사상


결국, 박봉자는 김유정과 <구인회> 활동을 함께하던 평론가 김환태와 결혼한다. 어쩔 수 없는 운명에 김유정은 절망했고, 만신창이가 된 채로 낙향했다. 박녹주를 따라다니느라 학교(연희전문학교)에 오랫 동안 나가지 않아서 제적 처리 되었기 때문이다.



캡처11.JPG ▲ 시인 박용철이 여동생 박봉자에게 보낸 친필 편지 원본. 오빠로서 여동생을 챙기는 다정하고, 세심한 배려한 엿보이는 편지다. ⓒ 사진 출처 ㅡ 영인문학관



◆ 오빠로서의 다정함과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는 박용철의 편지


박용철은 여동생 박봉자를 세심하게 챙겼다. 특히 여자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기에 교육에 유난히 힘썼다. 당시 딸에게 고등교육까지 받게 하는 집은 거의 없었다(그것도 시골에서)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여동생의 진학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여동생의 진학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단식 투쟁도 불사했다고 한다.

박용철의 그런 세심함은 그가 쓴 편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여동생의 작문 실력을 체크하며, 어떻게 하면 살아 있는 문장을 쓸 수 있는지 배려하는가 하면, 사진을 찍자면서 이왕이면 사진이 잘 나오게 검정 옷을 준비하라고 한다. 과연, 이런 오빠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봉자 보아라

네 글은 받아 읽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대강 엿볼 수 있었고, 내 글 쓴 것도 전보다는 얼마간 나아진 것 같다. 나는 이것을 그대로 고치기가 어려워 새판으로 만들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너의 본뜻을 상하지 않게 하였으나 네가 애써 만들어 쓴 말이라든지 수사(修辭, 말이나 글을 다듬고 꾸며서 더욱 아름답고, 정연하게 하는 일)는 다 달아나고 줄거리만 남았다. 결국, 너의 소녀시대에 있는 감격성이 모두 사라졌다. 이것은 아까운 일이다만 내가 고쳐 지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정 아까우면 네 글 한 토막을 내가 지은 끝에다 붙여 달아도 무방하겠다.

자세한 이야기는 학교로 가서 보고 말하겠지만, 너는 행복이란 말을 일부러 피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사람은 마땅히, 더욱이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로서는 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하여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민족이나 나라만을 위하여 헌신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한 비상시기, 가령 전쟁이나 민족적 격렬한 투쟁기에 있어서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길게 두고 개인 생활에 낙(즐거움, 기쁨)이 없으면 전 생활의 추진력을 잃어버리고 정체에 빠져 아무 일도 못 하는 위험에 빠질 것이다. (여기 열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문 말단(末段, 문장 등의 끝부분)은 이상의 의미로 내가 집어넣은 것이다. 잘 생각해 보아라.

일기(日氣, 날씨)도 추워지고, 서울에서 지낼 별 재미도 없음으로써 (월말에나) 집에 가서 겨울이나 지내고 올까 한다. 이번 토요일에는 나오겠지. (그 안에 만나보겠지만) 둘이 사진을 하나 찍을까 하니 그리 준비를 하여라. 될 수 있으면 검정 옷으로.

늦어, 미안하다.

ㅡ 11월 23일, 오빠 書




사랑을 쓰다 그리다 그리워하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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