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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 같은 《근원수필》을 쓴 작가의 본업은?

by 마테호른




제목_없음-2.jpg ▲ 한국 근대예술사를 대표하는 지식인, 근원 김용준. 오른쪽은 그가 직접 디자인한 수필집 《근원수필》 초판본.



◆ 한국 근대예술사를 대표하는 지식인, 근원 김용준

본업은 화가지만, 문장에도 뛰어나 “시는 정지용, 소설은 이태준, 수필은 김용준”이라

는 말 들어…


대부분 사람에게 ‘김용준’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하지만 한국 수필문학의 정수로 불리는 《근원수필》에 대해서 한두 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로 그 《근원수필》을 쓴 사람이 김용준으로, ‘근원’은 김용준의 호다.

근원 김용준은 누구보다도 화려한 이력을 지녔다. 서울대 미대 초대학장, 대표적인 미술이론가, 뛰어난 교육자, 미술사가, 장정가…. 특히 그는 한국예술사에서는 드물게 남과 북에서 동시에 일세를 풍미했으며, 화가, 비평가, 사학자 그리고 문학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친 근대 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다.

이런 수많은 화려한 이력을 지닌 김용준의 본업은 화가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1946년 서울대 미대를 탄생시킨 실질적인 주역이었던 김용준은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존경받는 스승이자,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어른이었다. 이에 그는 한때 벗들이 책을 출간할 때 표지 디자인을 해주기도 했다. 이태준의 《달밤》, 《복덕방》, 홍명희의 《임꺽정》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월북이라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한동안 그의 이름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었을 정도였다.



▲ 김용준 작, ‘수향산방 전경(1947년)’. ‘노시산방’을 물려받은 화가 김환기는 자신의 호 ‘수화’와 아내 김향안의 이름을 따서 ‘수향산방’이라 이름 붙였다. © 열화당



◆ 한국 수필문학의 정수, 《근원수필》…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소소한 일상 담아


말했다시피, 본업이 화가였던 김용준은 문장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보였다. 1948년, 그가 수필집 《근원수필》을 내자 “시는 정지용, 소설은 이태준, 수필은 김용준”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김용준은 1934년 소설가 이태준이 ‘늙은 감나무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이름 붙인 서울 성북동 노시산방(老枾山房)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여기서 한국 수필문학의 정수라고 불리는 명수필 《근원수필》을 쓴다. 그중 자신의 집 ‘노시산방’을 주제로 쓴 ‘노시산방기’에서는 집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와 그곳에 머물며 감나무와 여러 식물을 기르며 사는 소소한 일상을 그림 그리듯이 서술하고 있다.



그는 “수필이란 다방면의 책을 읽고 인생으로서 쓴맛, 단맛을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글”이라며, “마음속에 부글부글 괴고만 있는 울분을 어디 호소할 길이 없어 가다오다 등잔 밑에서, 혹은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하던 끝에 공연히 붓대에 맡겨 한두 장씩 끄적거리다 보니 그게 그만 수필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실 그의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내가 거하는 집을 노시산방(老枾山房)이라 한 것은 3, 4년 전에 이군(소설가 이태준)이 지어준 이름이다. 마당 앞에 한 7, 80년은 묵은 성싶은 늙은 감나무 2, 3주가 서 있는데, 늦은 봄이 되면 뾰족뾰족 잎이 돋고, 여름이면 퍼렇다 못해 거의 시꺼멓게 온 집안에 그늘을 지워주고 하는 것이 이 집에 사는 주인인 나로 하여금 얼마나 마음을 위로하여 주는지, 지금에 와서는 마치 감나무가 주인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요, 주인이 감나무를 위해 사는 것쯤 된지라 이군이 일러 노시사(老枾舍, 늙은 감나무 집)라 명명해준 것을 별로 삭여볼 여지도 없이 그대로 행세를 하고 만 것이다.

… (중략) …

나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는 교통이 불편하여 문전에 구루마(자동차) 한 채도 들어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집 뒤에는 꿩이랑 늑대가 가끔 내려오곤 하는 것이어서 아내는 “그런 무주구천동 같은 데를 뭘 하자고 가느냐”고 맹렬히 반대하는 것이었으나, 그럴 때마다 “암말 말고 따라만 와 보우” 하고 끌다시피 데리고 온 것인데, 기실은 진실로 내가 이 늙은 감나무 몇 그루를 사랑한 때문이었다.

무슨 화초, 무슨 수목이 좋지 않은 것이 있으리오만, 유독 내가 감나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놈의 모습이 아무런 조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풍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무껍질이 부드럽고 원시적인 것도 한 특징이요, 잎이 원활하고 점잖은 것도 한 특징이며, 꽃이 초롱같이 예쁜 것이며, 가지마다 좋은 열매가 맺는 것과 단풍이 구수하게 드는 것, 낙엽이 애상적으로 지는 것, 여름에는 그늘이 그에 덮을 나위 없고, 겨울에는 까막까치로 하여금 시흥을 돋게 하는 것이며, 그야말로 화조(花朝, 꽃 피는 아침)와 월석(月夕, 달 밝은 밤)에 감나무가 끼어서 풍류를 돋우지 않는 것이 없으니, 어느 편으로 보아도 고풍스러워 운치 있는 나무는 아마도 감나무가 제일일까 한다.

… (중략) …

가지마다 보기 좋게 매달렸던 감들이 한 개 두 개 시름없이 떨어지고 돌돌 말린 감잎이 애원하듯 내 앞으로 굴러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보기 좋던 나무 둥치가 한 겹 한 겹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나는 다른 어느 나무보다도 감나무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주인이 감나무를 위해 살고 있다시피 한 이 노시산방의 진짜 주인공이 죽는다는 게 될 말인가. 모든 화초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감나무만은 구해야겠다는 일념에서 매일 같이 십 전짜리 물을 서너 지게씩 주기로 했다. 그러나 감나무들은 좀처럼 활기를 보여주지 않은 채 가을이 오고 낙엽이 지고했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 한창 불타오르듯 보기 좋게 매달렸어야 할 감들이 금년에는 거의 다 떨어지고 몇 개 남은 놈들조차 패잔병처럼 무기력해 보인다. 주인을 못 만난 그 나무들이 내년 봄에 다시 씻은 듯 새움이 돋고 시원한 그늘을 이 노시산방과 산방의 주인을 위해 과연 지어 줄 것인지?

기묘 11월 4일 노시산방에서

ㅡ 김용준, 《근원수필》 ‘노시산방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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