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의 교과서’로 불렸던 이 남자

by 마테호른




◆ “자유시는 백석, 시조는 조운”… ‘현대시조의 교과서’라고 불렸던 시인 ‘조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ㅡ 조운, <석류>


시조 시인 조운의 <석류>라는 시다. 석류가 터지는 모습을 표현한 이 시는 기실 조운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시이기도 하다. 어떤 이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작품이 그의 가슴을 찢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고향과의 이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각오하고 썼기 때문”이다. 석류는 알알이 붉은 뜻으로 빠개 젖힌, 그의 혼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조운은 잊혀진 시인이다. 문학에 관한 웬만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그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때 육당 최남선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천재시인으로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시조 특유의 운율을 잘 살리면서 우리 민족의 서정과 정감이 배어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여 ‘현대시조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자유시는 백석, 시조는 조운”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이에 가람 이병기와 함께 시조 부흥운동을 펼치며 한국 현대시의 기반을 다지는 데 있어 구심점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1919년 삼일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중국으로 망명할 만큼 민족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 소설가 최서해(사진 오른쪽)와 처남 매제 사이였던 조운(사진 왼쪽). ⓒ 사진 출처 ㅡ 영광군민신문 캡처



◆ 가난한 민중의 삶을 다룬 그의 작품들…

독립운동을 했을 만큼 민족의식이 뚜렸했지만, 항상 고독하고, 설움이 많았던 사람


《조선문단》 2호에 <초승달이 재 넘을 때>, <나의 사람>, <울기만 했어요> 등 3편이 게재되면서 중앙문단에 등단한 조운은 당시 《조선문단》 기자로 활동하고 있던 소설가 최서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인지 훗날 세 살 아래 누이동생을 최서해에게 시집보내 처남 매제의 관계를 맺기도 했다.

두 사람은 조운이 3·1운동 후 일제의 체포령을 피해 만주를 유랑하던 시절에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된 후 2년 동안 만주 일대를 함께 떠돌며 문학에 관한 탄탄한 열정을 엮어나간다. 이에 비록 시와 소설이라는 장르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조운과 최서해의 작품 경향은 서로 닮아 있다. 실례로, 조운과 최서해의 작품 속에는 가난한 민중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는 1947년 서울로 자리를 옮겨 그해 5월 시조집 《조운 시조집》을 발간하게 된다. 그 후 한동안 대학에서 ‘시조론’과 ‘시조사’에 대해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1948년 가족과 함께 월북을 단행한 후 우리에게 잊힌 사람이 되고 말았다. 1992년 해금된 후에야 비로소 학계에 알려졌지만, 그의 시조집 하나 제대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한국문학통사》를 쓴 조동일은 조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조운은 이은상이나 이병기보다 더 시조를 알뜰하게 가꾸려고 했다. 이은상처럼 감각이 예민해 말을 잘 다듬는 것을 장기로 삼는 듯하지만, 기교에 빠지지는 않았다. 애틋한 인정을 감명 깊게 드러내려고 한 점에서는 이병기와 비슷하면서도 미묘한 느낌을 또렷하게 하는 데 있어 남다른 장기가 있었다.



image_4624223811600180817477.jpg ▲ 최서해의 묘비 제막식에 모인 문인들(1934년). 뒷줄 오른쪽 끝이 조운. ⓒ 사진 출처 ㅡ 영광군민신문 캡처



◆ 조운의 병약함을 걱정했던 최서해…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세상을 떠나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조운은 항상 고독하고, 설움을 간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외로웠고, 깊은 회한에 시달렸으며, 자주 앓았다고 한다. 이에 많은 사람이 그의 병약함을 걱정했다. 특히 매제였던 최서해는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천 리 길을 멀다하지 않고 바로 달려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처럼 그의 병을 자신의 일인양 아파하고 걱정하던 매제 최서해가 그보다 먼저 죽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그는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소리를 버럭 같이
냅다 한번 질러볼까
땅이 꺼져라 퍼버리고
울어볼까
무어나 부드득 한번
쥐어보면 풀릴까.

ㅡ 조운, <X월 X일>




조운이 병들었다.
가을바람은 나날이 높아간다. 정열에 타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신음하는 조운의 병석에도 이 바람이 스칠 것이다.

… (중략) …

조운의 건강이 어디서 상하였을까? 건강한 그를 본 것이 어제 같고, 느릿느릿한 그의 글씨를 받은 것이 아직 기억에 새로운데 대필로 쓴 그의 편지를 받고 위중하다는 그의 병보(病報)를 받으니 어리둥절한 것이 꿈만 같다. 그러나 믿는 벗들의 글이니 분명한 사실이라, 알 수 없는 우수사려(憂愁思慮)가 가슴을 지그시 눌러서 견딜 수 없다.

그가 병든 지 벌써 며칠이냐? 낫(鎌) 같은 초승달이 그새 둥글었다가 이지러졌으니 그의 괴로움이 얼마나 크랴. 흐르는 세월에 덧없는 인생이 이제 다시 느껴진다.

나는 그가 건강을 잃은 것을 생각에 생각을 해봐도 그 뿌리를 찾을 수 없다. 여러 가지로 추측은 하지만 그까짓 추측이 무엇이랴.

그는 자기의 병을 아는지?

… (중략) …

조운은 시 쓰는 사람이다. 시 읊는 사람이다. 그가 잘 쓰는지 못 쓰는지, 잘 읊는지 못 읊는지, 그것은 나도 모르거니와 그도 모른다. 마지못해 쓰고 마지못해 읊는다. 그가 읊고, 그가 쓰는 시는 목멘 여울 소리 같고 뜨거운 불과 같다. 그러나 흰옷 입은 그의 설움! 흰옷 입은 그의 소리! 알아주는 이 없다. 귀담아주는 이 없다. 그는 쓸쓸하다. 그 쓸쓸함이 병이 되었는가?

… (중략) …

조운아, 어서 일어나라! 뛰어라! 읊어라! 새로 푼 그 수수께끼를 읊어라! 새로 본 그 인생의 속을 읊어라! 나는 그것이 듣고 싶다. 그것이 듣고 싶다.

ㅡ 최서해, <병우 조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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