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경력을 연봉 및 지위 등이 향상되면서 위로 승진하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확연히 달라졌다. 조직의 수평화로 인해 수직적 상승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력에 대한 인식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나아가 이런 변화는 자기 브랜드 중심의 커리어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 구조는 이미 무한경쟁과 성과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다. 여기에 대처하려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방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자기 브랜드이다. 이제 고용 보장에 대한 책임은 조직이 아닌 개인이 져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른바 ‘프로티언 커리어(Protean Career)’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산업화 시대 직장의 개념은 20대 중반에 취업해서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에 정년퇴직하는 것이었다. 즉,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사원에서 시작해 부장이나 임원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많은 직장인이 이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기를 원한다. 입사 후 3~4년이면 대리가 되고, 또다시 3~4년을 버티면 과장이 되던 그런 정형화 된 패턴에서 벗어난 셈이다. 실례로, 입사 후 채 1년도 되지 않아 회사를 떠나는 대졸 신입사원이 넘쳐난다.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기간이 4년 미만인 직장인이 전체 직장인의 절반을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프로테우스(Proteus)’라는 바다의 신이 나온다. 프로테우스는 변신의 명수로 마음만 먹으면 무엇으로건 변신할 수 있다. 여기서 ‘변화무쌍한’이란 뜻의 ‘프로티언(Protean)’이 유래했다. 여기에 경력이란 단어가 붙으면 ‘프로티언 커리어(Protean Career)’란 말이 된다. 말 그대로 ‘변화무쌍하고 자유로운 경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스스로 끊임없이 배우고, 환경과 시대 변화에 따라 인생과 경력을 자유롭게 재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때문에 많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다양한 능력을 원한다. 거기에 맞는 능력을 갖춘 이들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온 것이다. 프로티언 커리어가 필수인 시대가 된 셈이다.
지난 40년간 인간의 평균 수명은 무려 26년이나 늘었다. 자기 브랜드 없이 수명만 길어진다는 것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불행한 노후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커리어 개발에 기업 경영 개념을 접목, 자기 브랜드를 통해 시장에서 자기 가치를 높여야 한다.
개인도 ‘나이키’나 ‘스타벅스’처럼 자신을 상징하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커리어를 걱정하는 직장인은 거의 없었다. 웬만하면 한 직장에서 거의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고, 평균 수명보다 일하는 기간이 길어 지금처럼 퇴직 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IMF 이후 시작된 노동 유연화 정책은 정리해고와 계약직을 급속히 확산했다. 정리해고는 기존 사원들의 커리어에, 계약직 도입은 신입사원들의 커리어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때부터 30대 중반만 돼도 명예퇴직을 걱정하게 되었으며, 대학을 졸업해도 정규직이 되려면 험하고 긴 여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끝난 후, 즉 은퇴 후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대해 산업디자인계의 거장, 김영세 씨는 이렇게 말한다.
먹고 살려면 잡(job)을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려면 커리어를 만들어야 해요. 왜 직장에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취직은 하는데,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 거죠. 이건 사장 입장에서 들으면 참 황당한 말입니다. 현재 직업과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따로 분리된 사람에게 어떤 재능과 성과를 기대하겠어요?
이제 커리어 패러다임(career paradigm)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미 직장인의 삶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어느 직장도 예순 살 이후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예순 살 이전도 문제고, 그 이후도 문제가 된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만 괴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