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와 ‘권력’의 탄생

— 이상이 아닌 현실로부터 출발한 정치 철학

by 마테호른

권력은 어떻게 철학의 주제가 되었는가?

서구 정치사상은 오랫동안 ‘도덕’과 ‘신의 섭리’라는 두 개의 축 위에서 형성되어 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이르기까지, 고대와 중세의 사상가들은 정치를 ‘정의’나 ‘선’ 같은 도덕적 가치의 실현 수단으로 이해했다. 군주는 신이 부여한 권한을 통해 통치하며, 인간 사회는 하느님의 의지에 따라 정해진 질서 속에서 움직인다고 여겨졌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는 궁극적으로 신적 질서의 일부였고, 철학은 초월적 선을 모색하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말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한 한 정치 사상가는 이 오래된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그는 전쟁과 배신, 혼란과 분열이 일상이었던 당대 현실을 목격하며,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치는 정말로 도덕의 연장선상에 머무를 수 있는가?”

“현실 속 권력은 왜 늘 이상과 다르게 작동하는가?”


이 질문은 그를 전통적인 철학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그는 철학을 신과 도덕이라는 추상적 세계로부터 끌어내려, 실제 인간이 살아가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헤치려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권력의 철학'이 시작되었고, 그 출발점에 마키아벨리가 있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1513년경, 정치적 실각 이후 은둔하던 마키아벨리는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정치 저술 중 하나인 《군주론》(Il Principe)을 집필한다. 이 책에서 그는 이상적인 통치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남는 군주를 그린다. 그에게 정치는 고결한 이상을 실현하는 장소가 아니라, 복잡하고 불안정한 인간 사회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권력을 지키기 위한 냉정한 기술이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본질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 권력은 도덕적 개념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착한 군주가 아니라, 유능한 군주가 살아남는다.”


정치에서 도덕적 이상만을 고수하는 자는 생존할 수 없다. 정의롭고 선한 의도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위기와 배신, 혼란을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 가능한가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정치적 판단은 도덕이 아니라 효과성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 권력은 변덕스러운 운명과 싸우는 기술이다

마키아벨리는 세상을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동맹은 쉽게 깨지고, 민중의 충성은 한순간이며, 행운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군주가 생존하려면 ‘비르투(Virtù)’라는 덕목이 필요하다. 이 비르투는 도덕적 선과는 구별되며, 통찰력, 용기, 결단력, 그리고 유연함을 포함하는 실천적 지혜다.


비르투를 갖춘 지도자만이 운명의 흐름을 다스릴 수 있고, 기회를 현실로 바꿀 수 있다.


⚫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사고방식은 통치의 조건이다

마키아벨리의 대표적인 명제는 흔히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 야망이나 이기심을 위한 권모술수를 옹호하지 않았다.


그의 핵심 논지는, 공공의 안정을 위한 한시적 기만이나 강압은 불가피할 수 있으며, 때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수단이 반복되거나, 권력자가 스스로 정당성을 잃는다면, 결국 그 통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즉, 그의 사유는 무제한적 권력의 찬양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 현실 속에서 최선의 정치적 선택이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왜 ‘냉혹한 철학자’라고 불렸는가?

마키아벨리는 종종 냉혹한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마키아벨리즘’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 행위를 가리키는 부정적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그의 철학을 단편적으로 이해한 결과다.


그는 혼란과 분열 속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나폴리 등―이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부패 속에서 무기력하게 흔들리는 현실을 목격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론이 아니라,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실천적 전략이었다.


그가 인간 본성에 대해 남긴 통찰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은혜보다는 두려움을 더 오래 기억한다.”

“군주는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다. 물론 두려움을 주되 미움받지는 말아야 한다.”


이러한 발언은 인간에 대한 비관이 아니라, 정치가 갖는 조건과 한계를 직시하는 태도였다. 그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지속 가능한 정치 질서를 세울 방법을 찾으려 했다. 이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단지 냉혹한 전략가가 아니라,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한 실천적 사상가였다.




‘권력의 탄생’이라는 근대적 전환

마키아벨리의 가장 위대한 전환은 권력을 신적 섭리나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기술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그는 권력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고 유지하고 조절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다.


“운명은 우리 삶의 절반에 불과하고, 나머지 절반은 인간의 행동에 달려있다.”


이 선언은 근대 정치 과학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이후 홉스, 로크, 루소, 몽테스키외, 헤겔에 이르기까지 모든 근대 정치 사상가들은 마키아벨리의 질문을 이어받았다. 그가 제시한 세속적인 국가 개념, 합리적인 통치 전략, 인간 중심의 정치는 오늘날 민주주의와 국제정치, 리더십 이론의 뿌리가 되었다.




마키아벨리와 오늘의 정치

오늘날에도 정치는 여전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는 도덕적 정당성과 실용적 효과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받는다.


외교적 협상, 전시 리더십, 대중을 향한 메시지 설계, 그리고 불확실한 정세 속에서의 빠른 결단 등, 현대 정치의 모든 장면에서 마키아벨리의 통찰은 유효하다.


그는 단지 ‘교활한 권모술수의 철학자’가 아니라, 혼란의 시대 속에서 질서를 세우기 위해 인간 조건의 본질을 직시한 정치 현실주의자였다. 그의 철학은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지적 나침반’이라 할 수 있다.




한 문장 요약

마키아벨리는 도덕적 이상이 아닌 인간 현실에 기반해 정치와 권력을 다시 사유하게 만든 근대 정치 철학의 창시자이다.

keyword
이전 08화알렉산더 대왕이 생각한 제국은 무엇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