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이 생각한 제국은 무엇이었나?

— 정복자를 넘어 세계시민의 꿈을 꾼 이상주의자

by 마테호른

정복자 알렉산더(Alexander), 그러나 그 이상을 꿈꾼 사람

알렉산더 대왕은 흔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불린다. 그는 기원전 4세기, 불과 스무 살의 나이에 마케도니아 왕위에 올라 10여 년 만에 그리스에서부터 인도 북서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정복하며, 헬레니즘이라 불리는 그리스 문화를 유라시아 전역에 퍼뜨렸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을 단순히 ‘영토를 넓힌 정복자’나 ‘탁월한 군사 전략가’로만 바라보는 것은, 그의 제국 구상에 담긴 철학적 깊이와 이상주의적 비전을 간과하는 일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을 통해 추구한 것은 단지 권력이나 명예가 아니었다. 그는 인종과 문화, 종교와 전통의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인간 사회를 꿈꾸었다. 그가 그렸던 제국은 단순한 무력의 산물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통합의 실험장이자, 다양성을 포용하는 이상적인 세계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인간 공동체를 상상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어린 시절,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두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규정하며, 도시국가 안에서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덕 있는 삶을 이상적인 인간 존재의 모습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폐쇄적인 폴리스 중심의 세계관을 넘어서고자 했다. 초국적인 인간 공동체를 꿈꿨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을 단지 마케도니아인의 왕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온 인류의 통치자’라 자처하며, 그리스와 바빌로니아, 페르시아와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하나로 아우르는 다문화적 질서의 실현을 제국의 목표로 삼았다. 그런 그의 구상에는 다음과 같은 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복은 지배가 아닌, 만남과 통합의 장이 되어야 한다.”




문화 융합의 실험자, ‘하나의 세계’를 설계하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룩한 제국은 단순한 군사적 정복의 결과로 유지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복 이후에도 정복지를 통합하기 위한 적극적인 문화 융합 정책을 펼쳤다. 그의 제국은 무력으로만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고 어우러지는 새로운 질서를 향한 실험장이었다.


● 현지 문화를 수용한 통치 전략

알렉산더 대왕은 피정복 민족의 문화를 억압하거나 동화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페르시아 궁정의 의복과 예절을 받아들이고, 바빌론의 신전을 보수하며, 이집트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등 현지의 신앙과 전통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였다. 문화 통합의 수단으로 혼인도 활용했다. 자신은 페르시아 귀족 여성 록사나(Roxana)와 결혼했고, 측근 장군들에게도 현지 귀족 여성과의 결혼을 권장했다. 이른바 ‘동서 혼인 정책’은 단순한 정치적 동맹을 넘어, 혈통과 문화를 아우르는 상징적 결합이었다.


● 도시 건설과 헬레니즘 문화의 확산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한 지역에 70개가 넘는 도시를 건설했으며, 그중 다수를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이 도시들은 단지 군사적·행정적 중심지가 아니라, 그리스 문화와 현지 문화가 교류하고 융합하는 문명적 거점이었다. 도시에는 도서관, 극장, 체육장 같은 공공시설이 들어섰고,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었으며, 다양한 종교와 철학이 공존했다.


그의 제국은 그 자체로 ‘세계 최초의 다문화 실험’이었고, 그 실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헬레니즘 문명’이라는 형태로 꽃을 피웠다. 알렉산더가 세운 도시들에서는 수 세기 동안 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동서 문명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인류 문명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제국의 철학: 지배를 넘어선 ‘공존의 정치’

알렉산더 대왕은 ‘제국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라는 문제보다, ‘서로 다른 민족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의 제국 구상에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 기조가 있었다.


상호 존중: 피정복민을 열등한 존재로 보지 않고, 페르시아의 지혜, 이집트의 신비, 인도의 명상적 전통 등을 배움의 대상으로 여겼다.


다양성의 제도화: 제국의 행정 시스템에는 현지인과 그리스인이 함께 참여했고, 법률과 언어 역시 이중 체계로 운용되었다.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 알렉산더 대왕은 “나는 마케도니아인도, 페르시아인도 아니다.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라는 생각을 가질 만큼 초국적인 인간 공동체 사회를 꿈꿨다. 이는 후대의 스토아 철학자들이 주장한 “모든 인간은 하나의 이성적 공동체에 속한다”라는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미완의 유산, 그러나 살아 있는 꿈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급격히 분열되었다. 그는 생전에 명확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고, 그 결과 제국은 그를 따르던 장군들에 의해 셀레우코스 제국(Seleucid Empire),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c dynasty), 안티고노스 왕조(Antigonid Dynasty)로 나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그의 이상까지 묻지는 못했다. 그가 세운 수많은 도시, 그 도시들에서 이루어진 문화의 융합, 그리고 인종과 전통, 종교와 언어의 경계를 넘어선 세계 공동체에 대한 이상이 수백 년에 걸쳐 헬레니즘 문화로 살아남았고, 로마 제국, 이슬람 제국, 유럽 문명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남긴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은 과연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가?”

“제국은 억압의 도구인가, 아니면 ‘다름’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인가?”




한 문장 요약

알렉산더 대왕에게 제국이란, 정복의 결과가 아닌 경계를 넘어선 인간 공동체를 향한 미완의 철학적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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