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은 왜 이상해 보일까?

― ‘의미 없음’ 속에 숨은 질문의 미학

by 마테호른

‘작품’이 아닌 ‘사건’이 된 미술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종종 당황하곤 한다. 벽에 기대진 못 박힌 나무 판자, 바닥에 놓인 쓰레기 봉투 같은 오브제, 혹은 제목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영상 작품이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게 정말 예술인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현대미술 앞에서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서부터는 아닌가?’를 고민한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재현’이나 ‘기술’의 완성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과거의 예술이 자연을 정교하게 모사하는 데 주력했다면, 현대미술은 ‘예술 그 자체의 본질’을 끊임없이 문제 삼는다. “이것이 왜 예술인가?”, “예술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 작품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을 넘어, 하나의 ‘예술적 사건’이자 ‘참여의 행위’로 재탄생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은 고정된 ‘완성물’이 아닌, 시간 속에서 감상자와의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된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작품을 단지 ‘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과 ‘함께 사유하고 반응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해되지 않음’을 의도한 미술

현대미술은 불친절하다. 명확한 해석을 거부하거나, 감상자에게 적극적인 사고와 참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언어, 낯선 형식, 때로는 불쾌한 메시지를 통해 기존의 미적 관습과 감상자의 기대를 뒤흔든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 〈샘 Fountain, 1917〉이다. 그는 공장에서 만든 소변기 하나를 전시장에 놓고 “이것이 예술이다”라고 선언했다. 이 도발은 단순히 기성품을 예술로 둔갑시킨 장난이 아니었다. 뒤샹은 “예술은 작가가 예술이라 선언할 때 성립된다”는 말을 통해, 미적 가치, 창작 행위, 그리고 예술 제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뒤샹 이후 현대미술은 ‘의미를 드러내는 것’보다 ‘의미를 질문하게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관람자의 내면에서 질문이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다. 현대미술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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