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말?

1941년 11월 5일 作, <별 헤는 밤>

by 마테호른


시인 윤동주를 떠올렸을 때,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나 이미지는 ‘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산문화재단에 따르면 김응교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단어나 이미지’를 인터넷 이용자 10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응답자(312명)가 ‘별’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끄러움’(249명), ‘성찰’(78명)을 떠올리는 이들이 그 뒤를 이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1941년 11월 5일 作, <별 헤는 밤>



★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작품으로, 시인의 작품 중 가장 서정성이 짙다. 그러나 육필 원고를 보면 시가 1차로 완성된 후 별도로 뒷부분을 추가했음을 알 수 있다. 1941년 11월 5일에 썼다고 기록했는데, 추후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내 이름자 묻친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는 4행을 덧붙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하늘, 가을, 별, 고향처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와 어머니, 어린 시절의 벗들,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시인이 그리워하던 존재와 외국의 시인들을 등장시키며 마치 이야기하듯 서정의 밀도를 점점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별빛 가득한 밤 언덕 위에 ‘내 이름’을 썼다가 흙으로 덮어 버리면서 돌연 급변한다. 아픈 시대를 사는 시인의 자각이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후 마지막 연에는 시대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별 헤는 밤>에는 진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별은 꿈과 소망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시인은 열두 번이나 별을 그리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드러냄과 동시에 어두운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편, <별 헤는 밤>은 어떤 매개체를 통해 어머니를 비롯한 그리운 이들과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와 발상과 표현 방법이 매우 유사하다. 이는 시인이 백석을 흠모해 그의 시집을 열독하고, 그와 같은 시를 쓰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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