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4월 14일 作, <흰 그림자>
<흰 그림자>에서 ‘흰’은 우리 민족을 뜻한다. 유학 시절에도 나라 잃은 설움을 눈물로 삼켜야 했던 민족이 그림자가 되어 눈앞에 아른거린 것이다. 이에 시인의 유고인 육필 원고 19편을 보관했던 후배 정병욱은 시인을 존경하는 뜻을 담아 호를 ‘백영(白影, 흰 그림자)’이라고 지었다.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 1942년 4월 14일 作, <흰 그림자>
★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작품.
시인은 17세 때부터 창작을 시작해 시 120편과 산문 4편을 남겼다. 일본 유학 시절에도 많은 작품을 썼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체포 당시 대부분 작품이 압수되어 처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유학 시절에 쓴 작품으로 현재 전하는 것은 <흰 그림자>와 <사랑스런 추억>, <흐르는 거리>, <쉽게 씌여진 시>, <봄> 등 5편뿐이다. 5편 모두 릿쿄대학 재학 시절 쓴 것으로, 압수되지 않은 이유는 이 작품들만 연희전문학교 시절 벗이었던 강처중에게 쓴 편지에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1941년 12월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시를 묶은 시집을 출간하려던 계획이 실패하자, 시인은 직접 육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3부를 만들어 스승 이양하 교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준 후, 나머지 1부는 자신이 간직했다.
정병욱은 그 시집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기며 “한글로 쓰인 것이니, 절대 일본 경찰들에 들키지 말고 잘 보관해달라”고 부탁했고, 그의 어머니는 그것을 마루 밑에 파묻은 항아리 속에 넣어 보관했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자신의 여동생과 시인의 동생 윤일주가 결혼하자 그들에게 시인의 원고를 건넸다. <서시>를 비롯한 19편의 시가 담긴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렇게 해서 출간될 수 있었다.
<흰 그림자>는 시인이 현실의 고통을 종교적 신념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기독교적 신앙을 통해 ‘미성숙(무지’)에서 ‘성숙’으로, 나아가 ‘종교적 실천(순교)’으로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작품이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와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라는 시구에 그런 각오가 잘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