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시골 마을의 여름은
느리고 무겁게 흘렀다.
흠뿍 내리는 비를 맞으며 놀던 시간,
논둑길을 따라 달려가던 발걸음,
달콤한 수박을 입에 물고
낮잠을 즐기던 오후.
그때의 나는
팥빙수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얀 얼음 위에 달콤한 팥이 얹힌 모습은
TV 속 먼 도시 이야기처럼만 느껴졌다.
지난 주말, 집사람과
오랜만에 팥빙수를 먹었다.
얼음 알갱이 위로 부드럽게 퍼진 연유,
고소하고 달콤한 팥,
작은 떡과 열대 과일이 퍽 먹음직스러웠다.
숟가락으로 한 입 떠 넣는 순간,
달콤함이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며
일주일 동안 쌓였던 피로와 마음의 짐이
눈 녹듯 사라졌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 속에서
어린 시절의 여름이 되살아났다.
바람에 흔들리던 여름 냄새,
때를 잊은 개구리와 메뚜리 소리,
빗속을 친구들과 소리치며 뛰놀던 기억들.
눈을 감으면
햇볕 냄새, 먼지 냄새, 땀 냄새까지
생생히 떠올랐다.
팥빙수 한 그릇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었다.
삶의 긴 세월 속에서 잊혀졌던 기억과
지금의 나를 달콤하게 이어주는 작은 다리였다.
달콤함과 시원함이 어우러진 그 맛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나를 위로하고,
어린 시절의 여름을 다시 불러왔다.
삶이 아무리 바쁘고 지쳐도,
팥빙수 한 숟가락 속에서, 나는
유년 시절의 여름을 만난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시간과 세월이 잠시 멈춘 듯
입가에 웃음이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