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3

by 마테호른

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운동장에 차가 빼곡히 들어찬 걸 자주 볼 수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저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운동장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공간이지, 주차장이 아니다.

차가 빼곡히 들어찬 운동장에서 마음 편히 뛰어놀 수 있는 아이는 없다.

하다못해 놀면서도 불편하고, 가슴이 조마조마할 것이 틀림없다.

혹시라도 차에 부딪히면 크게 혼이라도 날까 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학교의 주인은 차나 차의 주인인 선생님, 학교 직원들이 아니라 아이들이다.

그들 역시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자신들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생각 없이 거기에 주차하는 것일 뿐.

그로 인해 아이들이 겪을 불편쯤은 가볍게 무시한다.

아이들은 놀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것일까.


왜 학교의 주인인 아이들이 차나 아무 생각 없는 어른들 때문에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거야말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꼴이다.


한 번은 학교 앞을 지나다가 선생님인 듯한 사람이 아이를 혼내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잠깐 들은 바에 의하면, 축구공 때문에 차의 문짝이 살짝 긁히고 패인 듯했다.

화가 난 그 사람은 어쩔 줄 모르는 아이를 혼내는 것도 모자라 당장 부모님을 데려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놀란 사람은 아이가 아닌 나였다.

그 사람에게는 어린 제자의 아픔보다는 차가 훨씬 더 소중했던 모양이다.


물론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운동장에 대야 하는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하는데, 그걸 해결할 마음은 없어 보인다.

학교도, 선생님도, 교육 당국도 손 놓고 방관할 뿐이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 것일까.


나이가 많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책임질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이 뭔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안다.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은 크게 변한다.

비뚤어진 삶을 산 사람은 그동안의 실수와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걷게 되며,

낯선 길을 걸으며 두려워하던 사람은 한껏 자신감을 얻어 가던 길을 더욱 힘차게 가게 된다.


예컨대, 그것은 깜깜한 밤길을 운전하는 것과도 같다.

깜깜한 밤길을 운전하다 보면 뒤에 차가 있을 때 한결 쉽게 운전할 수 있다.

마음도 훨씬 안정되고 편안해진다.

뒤차에서 나오는 불빛이 어둠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어른은 그런 불빛과도 같은 사람이다.


그런 어른을 존경하고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너 역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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