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위를 걷던 소년의 가을

by 마테호른

가을이 오면 문득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학교 운동장 한쪽에 수북이 쌓인 낙엽 더미.
체육 시간 종이 울리기 전, 친구들과 발끝으로 차며 뛰어가던 그 길.
낙엽은 바스락 소리를 내며 터졌고, 그 소리만으로도 마음은 왠지 들떴다.


그 시절 가을 하늘은 지금보다 더 높아 보였다.
하늘 끝까지 닿을 것 같은 잠자리 떼가 지천에 날아다녔고,
손바닥에 침을 발라 덮치듯 잡던 작은 몸짓 하나에도 하루가 꽉 찼다.


돌아오는 길에는 문방구 앞에서 오락기 소리에 귀 기울이고,
손에는 붉게 익은 뽕사탕이 달콤하게 녹아내렸다.


집 앞 감나무에는 둥글고 주황빛 도는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꼭대기에 달린 까치밥 감을 남겨두셨고,
나는 그 감이 까치 차지인지, 아니면 내 차지인지 속으로 늘 계산했다.


찬바람이 불면,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에서 풍겨 나오던
약간은 시큼하면서도 은근히 따뜻한 담배 냄새조차도,
이상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제는 사라진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공기마저 투명하던 그 시절의 가을은
사진처럼 내 안에 선명히 남아 있다.


살아온 세월이 쌓일수록, 그때의 단순하고 또렷한 기쁨이
더욱 그리워진다.


낙엽을 차던 소년의 가을은 갔지만,
가을 바람이 불면 여전히 내 가슴 어딘가에서 바스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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