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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가치

by 마테호른




◆ 삶은 문틈으로 달리는 백마처럼 찰나의 순간


공자가 노자에게 도(道)에 이르는 방법을 묻자, 노자가 이렇게 말했다.


“먼저 몸과 마음을 씻어낸 후 지식을 깨뜨려야 합니다. 무릇, 도라는 것은 깊고 멀어서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박식(博識)하다는 것이 반드시 참된 앎은 아니며, 능변(能辯)이라는 것이 반드시 참된 지혜는 아닙니다. 도를 터득한 성인(聖人)은 그런 것을 버릴 줄 압니다. 깊은 바다와 같이, 높은 산과 같이, 끝나는 데서 다시 시작해서 만물을 운행하며, 다함이 없는 것이 바로 군자의 길입니다. 만물이 모두 이것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도(道)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마치 흰 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白駒過隙)을 문틈으로 얼핏 보는 것과 같은 순간일 뿐입니다. 모든 사물은 물이 솟듯 문득 생겨나서 물이 흐르듯 아득하게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망아지가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라는 말로 인생이나 세월이 덧없이 짧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 편에서 유래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白駒之過隙)처럼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다. 모든 사물은 물이 솟아나듯이 어느 날 문득 생겨났다가 물이 흐르듯 아득하게 사라져 가는 것이다. 변화로써 태어났다가 또한 변화로써 죽을 뿐이다. 생물들은 이를 슬퍼하고, 사람들도 이를 슬퍼한다. 죽음이란 화살이 화살집을 빠져나가고, 칼이 칼집을 빠져나감과 같이 혼백이 육신에서 빠져나가고, 이에 몸이 따라서 무(無)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니, 이야말로 위대한 복귀(復歸)가 아닌가.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이처럼 허무한 일이다.”


《사기(史記)》 〈유후세가(留候世家, 한 고조 유방의 책사였던 장량의 전기)〉에도 이 말이 나온다. 여태후(呂太后)가 장량(張良)에 관해 한 말이다.


여태후는 한 고조 유방의 정비로서 측천무후, 서태후와 함께 중국 역사상 3대 악녀로 꼽힐 만큼 문제가 많은 인물이다. 그 때문에 고조의 공신들을 못 미더워했을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그들을 모두 내쳤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인정했던 사람이 바로 장량이다.


한 고조가 죽자, 장량은 일체의 음식을 끊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한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하지만 진나라에 의해 한나라가 멸망하자, 만금의 재산을 아까워하지 않고 한나라를 위해 강포한 진나라에 원수를 갚으려고 하다가 천하를 진동시켰다. 오늘 이 세 치의 혀로 황제를 위해 스승이 되어 식읍이 만 호에 가까우며, 작위는 열후(列侯)이니, 이는 평민이 최고에 오른 것으로, 나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이제 세속의 일은 모두 잊고, 적송자(赤松子, 중국 전설상의 신선)를 따라 노닐고자 할 뿐이다.”


그러자 여태후가 그를 회유하고 나선다.


“인생이라는 한 세상살이는 ‘흰 말이 틈을 지나가는 것’과도 같소. 그런데 어찌 스스로 괴롭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소.”


결국, 장량은 태후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끊었던 곡기를 다시 이었다.



life-2382349_1280.jpg ▲ 삶은 문틈으로 달리는 백마처럼 찰나의 순간이다.



◆ 삶은 깨달음의 연속, 자기 안에 든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고개를 숙인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하루살이는 밤과 새벽을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는 덧없고, 내년을 모르는 쓰르라미는 허망하기 그지없다.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신의 눈으로 보면 백 년도 못사는 인간의 삶은 하루살이와도 같을지도 모른다.


나이 들수록 돈과 명예보다는 나를 찾아야 한다. 세상에는 스스로 불행해지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돈이나 명예에 집착하는 것 역시 그중 하나다. 돈이나 명예에 집착하게 되면 내 삶이 아닌 남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수동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목표를 완성해도 절대 행복하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는데도 머릿속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꾸 맴도는 사람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삶은 깨달음의 연속이다. 특히 나이 들수록, 실패할수록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많아진다. 이는 벼가 고개를 숙이는 이치와도 같다. 잘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깊이 숙인다. 벼가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다. 가득 찼기 때문이다. 설익은 벼는 고개를 절대 숙이는 법이 없다. 고개를 높이 치켜든 채 스스로 뽐내고 잘난 체할 뿐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안에 든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고개를 숙인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더 크게 성공하려고 일부러 고개 숙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 거기에는 힘든 삶을 이기며 사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끊임없는 욕심과 탐욕에 빠져 산다. 마치 천 년을 살기라도 할 것처럼 이기적인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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