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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후반부가 중요한 이유

by 마테호른




◆ 행백리자 반구십리(行百里者 半九十里),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삼아야 한다


행백리자 반구십리(行百里者 半九十里).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삼아야 한다’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건 마무리가 중요하니, ‘일을 완전히 끝마칠 때까지는 긴장을 늦추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경종인 셈이다.


우리 삶 역시 마찬가지다. 죽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흐트러짐 없이 살아야만 아름답고 의미 있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는 말이 있다.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 최고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두보(杜甫)의 시 〈군불견(君不見)〉에 나오는 말로, ‘관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라는 뜻이다.


오랜 유랑 끝에 쓰촨성 어느 오지에 정착한 두보는 심산궁곡에 유배 가서 실의에 빠져 있던 친구의 아들 소혜(蘇徯)를 격려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보낸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길가에 버려진 연못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앞서 꺾여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 년 뒤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쓰이게 되고, 한 섬의 오래된 물은 교룡을 숨기기도 한다. 장부는 관 뚜껑을 덮어야 비로소 일이 결정된다. 그대는 다행히 아직 늙지 않았거늘, 어찌 초췌하게 산중에 있다고 원망하는가. 깊은 산 아득한 골짜기는 살 곳이 못 되니, 벼락과 귀신이 오가고 미친 바람까지 부는구나.”


‘사람의 일이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사람은 죽은 뒤에야 정당한 평가를 받는다’라는 말이다. 이에 용기를 얻은 소혜는 심기일전해서 훗날 유세객으로 이름을 떨쳤다.



chalkboard-620316_1280.jpg ▲ 삶의 성공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 삶의 성공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중국 고전 《채근담(菜根譚)》에 ‘간인지간후반절(看人只看後半截)’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평가하려면 삶의 후반부를 봐야 한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삶의 후반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에 걸맞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강태공으로 알려진 여상(呂尙)과 《삼국지》지의 주인공 유비(劉備)이다.


사마천의 《사기》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 의하면 태공망의 성은 강 씨지만, 봉해진 성을 좇아 여상이라고 했다고 한다. 빈둥빈둥 놀면서 한가롭게 낚시나 즐기는 그를 대부분 사람이 보잘것없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진가를 알아줄 사람을 묵묵히 기다렸다. 그 세월이 무려 80년이었다. ‘빨리빨리’에 익숙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는 우리에게 그의 이야기는 큰 깨달음을 준다. 하지만 기다리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특히 80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면 대부분 포기할 것이 틀림없다.


기다리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란 힘든 것을 참고 견디는 능력일 뿐만 아니라 나를 유혹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이기도 하다. 나비 유충이 고치 안에서 오랜 시간 인고해야만 아름다운 나비로 환골탈태할 수 있듯,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인내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대부분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해 중도에 포기한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복수불반분이란 ‘한 번 엎어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라는 뜻으로, 상황이 더는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인내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참고 견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농부가 가을의 결실을 기대하며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잘 보살피는 것과도 같다. 지혜로운 농부일수록 기다림에 익숙하듯, 잘 참고 견디는 사람만이 더 크고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실로 변화무쌍한 궤적을 그리는 삶의 항로에서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의의 편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삶의 성공 여부는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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