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7년 9월 作, <바다>
알다시피, 윤동주가 살던 만주 용정은 바다와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 때문에 바다를 보려면 먼 길을 일부러 가야만 했다. 그런데 윤동주의 작품 중 <바다>라는 시가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를 떠올리면서 썼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생동감 넘치는 그 시는 과연 어떻게 해서 탄생한 것일까.
실어다 뿌리는
바람조차 씨원타.
솔나무 가지마다 새춤히
고개를 돌리어 뻐들어지고
밀치고
밀치운다.
이랑을 넘는 물결은
폭포처럼 피어오른다.
해변에 아이들이 모인다
찰찰 손을 씻고 구부로
바다는 자꾸 섧어진다
갈매기의 노래에…
도려다보고 도려다보고
돌아가는 오늘의 바다여!
─ 1937년 9월 作, <바다>
광명학교 5학년이던 1937년 9월, 시인은 금강산과 원산 송도원 등지로 수학여행을 다녀온다. 윤동주는 그때 말로만 듣던 바다를 처음 봤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시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고, 돌아오는 길이 두고두고 아쉬웠을 것이다.
그때 쓴 작품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비로봉>이다. 비로봉은 금강산의 최고봉으로 높이가 1,638m에 달한다. 빼어난 산악미와 함께 정상은 약간 평지를 이루며, 외면은 깎아 세운 듯한 절벽으로, 금강 1만2천 봉을 굽어보는 장관이 압권이다.
만상을
굽어보기란─
무릎이
오들오들 떨린다.
백화
어려서 늙었다.
새가
나비가 된다
정말 구름이
비가 된다.
옷자락이
칩다.
─ 1937년 9월 作, <비로봉>
생각건대, 시인은 처음부터 비로봉에 관한 시를 쓰고 싶었을 것이다. 평소 존경했던 정지용 시인이 <비로봉>이란 시를 발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백화 수풀 앙당한 속에/ 계절이 쪼그리고 있다./ 이곳은 육체 없는 요적한 향연장/ 이마에 시며드는 향료로운 자양!/ 해발 오천 피이트 권운층 우에/ 그싯는 성냥불!/ 동해는 푸른 삽화처럼 옴직 않고/ 누뤼 알이 참벌처럼 옴겨 간다…”
윤동주에게는 모든 것이 시였다. 하지만 그가 살던 시대는 그에게 시만 쓰고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누구보다 마음이 여리고 순수했던 그였기에, 그 고민 역시 남달랐을 것이다. 그의 부끄러움과 자기반성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리라.
시인은 단 한 번도 조국과 민족을 잊은 적이 없다. 민족의 아픔을 사랑으로, 분노를 꿈으로 피워냈다. 그것이 우리가 시인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