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만 빼고 세상 모두가 주인공인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자신감은 물론 모든 의욕이 다 사라진다. 이른바 ‘슬럼프’다.
슬럼프란 ‘심신 상태 또는 작업이나 사업 따위가 일시적으로 부진한 상태’를 말한다. 즉, ‘일시적으로 뭔가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태’이다.
슬럼프는 뜻하지 않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러다 보니 잘 나가던 사람이 예기치 않은 병이나 사고 때문에 주저앉기도 하고, 믿었던 동료나 친구의 배신으로 한순간에 삶의 의욕을 상실하기도 한다. 뚜렷한 이유 없이 지나온 삶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이런 위기와 역경을 강한 의지와 주변의 도움,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멋지게 이겨내곤 한다. 특히 슬럼프가 만드는 극적인 상황이 오히려 주인공의 삶을 더욱 빛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며, 언제나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슬럼프를 최고의 기회로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도약의 기회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힘겹다.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기 때문이다. 강한 의지는 오히려 일을 더 꼬이게 하고, 주변에 마땅히 도움을 줄 만한 사람 역시 없다. 행운의 여신마저 일부러 피해 가는 듯 불운이 계속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미래는 보이지 않고, 현재는 곤궁하며,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어디에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처럼 자기 자신이 느껴진다. 슬럼프가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과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가 쓴 《핑》을 보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연못 밖으로 뛰쳐나온 ‘핑’이라는 개구리가 나온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하지만, 오직 뛸 줄밖에 모르는 핑은 더 높은 곳에 오르려다가 그만 강물에 빠지고 만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핑은 불현듯 부엉이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몸의 힘을 빼고 물의 흐름에 몸을 맡겨라!’
그제야 핑은 허우적거림을 멈추고 물의 흐름을 느끼려고 애썼다. 그러자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덤비던 물이 잔잔해졌고, 마치 물과 자신이 하나가 된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여전히 위험한 물속에 있었지만, 더는 자신을 위협하는 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물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육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인생의 위기와 슬럼프를 받아들이는 방법, 극복하는 방법, 그것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는 방법에 대해서는 별로 배우지 못했다. 그 때문에 돌멩이 같은 작은 시련 앞에서도 마치 큰 바위에 짓눌리기라도 한 듯 신음하고, 아파하며, 지레 포기하곤 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라고 한다. 위기라고 느끼는 순간, 그것은 위험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위험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면 위기의 순간 최선을 다해 도망쳐야 한다. 필사의 몸부림이라도 쳐서 일단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회의 눈으로 바라보면 위기는 더는 도망쳐야 할 위험이 아닌 새로운 이정표가 된다.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할까.
한때 ‘타격의 신’ 또는 ‘양신’으로 불렸던 전 프로야구 선수 양준혁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양준혁 역시 수 차례 슬럼프를 겪었다. 실례로, 2002년에는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타율이 2할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넷.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타격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두 달 넘게 천여 가지가 넘는 타격 자세를 실험하며 새로운 타격 기술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만세 타법’으로, 이듬해 그는 프로 입단 후 최고의 성적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마흔두 살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모두가 양준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모두가 그와 같이 일이 잘 풀릴 것이란 보장은 없다.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내리막을 향해 곤두박질 때 주저앉지 않고 용기를 내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우직하게 해나가면 그것이야말로 소리 없이 남들에게 인정받고 스스로 강해지는 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슬럼프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
첫째, 슬럼프에 굳이 집착해선 안 된다. 파도가 아무리 크고 성난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물거품이 되어 곧 사라진다. 슬럼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동안 슬럼프는 파도처럼 일생에 걸쳐 반복될 것이다. 때로는 거세게, 때로는 부드럽게, 또 때로는 빠른 속도로 몰아치고, 때로는 지루할 정도로 잔잔하고 더디게, 때로는 모든 것을 쓸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귀한 것을 실어오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굳이 집착할 필요 없다.
둘째, 슬럼프에 빠졌을수록 일 처리 속도를 늦춰야 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그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가는 더 심한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큰 귀와 아주 작은 입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조금 수월해지곤 한다. 듣는 사람이 내 편에 서서 동의하고 지지해주면 더욱더 그렇다. 그때 중요한 것이 가능한 한 말은 적게 하고, 귀를 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주 특별한 충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계획과 목표를 유연하게 수정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건,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내가 처한 어려운 상황도 되돌아보면 배울 점이 반드시 있다. 이를 통해 미처 몰랐던 것을 새롭게 깨닫고 배우면 더 나은 방향으로 계획과 목표를 수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세운 목표와 계획을 수정해야 할 일이 생겨도 ‘이번 일은 실패했다’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조금 더디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 믿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실수나 실패에도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