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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슴은 브래지어 못 입나요?

사실, 이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폐해

by 오이

10년 전만 해도 뽕브라가 유행이었다. 브래지어 두 개를 겹쳐 입기도 했다. 참 유난이었다. 와이어로 가슴살 한 개라도 더 부여잡기 위해 거죽까지 받혀 올렸고 널따란 날개같이 생긴 천 쪼가리는 흉통을 죄었다. 원래 가슴보다 더 커 보여야 했고 두 가슴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가슴골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옷맵시가 산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더 커 보일 가슴도, 모일 가슴도 없었다. 무엇보다 맞는 브래지어가 없었다. 162cm에 40kg. 자랑이 아닌 안타까운 나의 신체사이즈다. 지방 없이 툭 튀어나온 갈비뼈를 빨래판 삼아 빨래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아, 난민, 모글리와 같은 별명이 나의 학창 시절을 잘 대변해주리라.


한국에서의 브래지어 최소 사이즈는 75A. 가슴 밑둘레가 75cm이고, A는 유두 위치의 둘레와 가슴 밑둘레가 10cm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일단 흉통이 65cm밖에 안 되는 나에게는 턱없이 컸다. 몸에 딱 붙어 내 가슴을 받쳐주어야 하는 브래지어가 내 몸에 얹어지면 허공에서 돌고 돌았다. 키는 엄마보다도 큰데 엄마옷을 입은 모양새였다. 어쩌면 내가 입는 티셔츠보다 큰 것 같았다. 야속했다.


어쩔 수 없이 속옷을 사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둘레를 줄이는 일이었다. 후크의 양옆의 천 쪼가리를 앞뒤로 접어 한 땀 한 땀 꼬맸다. 나는 이 작업에서 바느질 스킬을 획득했다. 그렇게 뒷 날개쪽의 10cm 정도를 줄이고 나면 딱 맞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사실 띠 둘레는 줄여봤자다. 앞에 컵 부분은 둘레가 75인 사람을 위한 가슴 모양이었으므로 브래지어 패드는 내 가슴 앞면을 덮고도 뒤로 전진했다. 참 우스웠다. 그래도 어쩌겠나. 없는 가슴을 있어 보이게 하고 싶었고 툭튀 유두는 가려야 할 부분이었다.


그렇게 속옷을 꿰매 입으면서 가장 수치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가슴이 가득 들어차야 할 컵 속이 공기로 가득 차니 누군가 실수로 내 가슴을 치면 패드가 움푹 들어가 원래대로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그러면 남들 눈치를 살살 살피며 몰래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패드를 올바르게 펴내야 했다.


한여름은 말할 것도 없다. 헐렁한 속옷 위에 얇은 티셔츠를 입으니 티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상체를 조금이라도 숙이면 브래지어 속 텅 빈 내 가슴이 보일까 무척이나 신경 쓰였고, 티셔츠는 무정하게도 빈 브래지어 속으로 말려들어갔다. 정말이지, 무참하고 참혹하고 비참했다. 가장 작은 사이즈 75A 브래지어는 나에게 가혹했다.




미국은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미국 여행을 갔다. 나는 친구 손에 이끌려 그 당시 전 세계를 휩쓸던 (안타깝게도 지금은 많이 쇠퇴된) 란제리숍 '빅토리아 시크릿'에 방문했다. 나에게 속옷은 원수였지만, 친구 덕분에 미국의 랜드마크같이 차려져 있는 그 란제리숍에 가게 되었다. '속옷'은 편하게 입는 느낌이지만 '란제리'는 뭔가 화려한 느낌이지 않은가. 말 그대로 대형 화면에는 세계 최고의 모델들이 휘황찬란한 속옷을 입고 런웨이를 날아다니는 영상이 틀어져있었고, 그 아래로 대형 저택에만 있을 법한 양쪽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사이로 엄청나게 예쁘고 다양한 속옷들이 전시되어있었다.


매장에는 아이라인을 관자놀이까지 까맣게 그려 올린 직원 언니들이 핑크색 줄을 들고 다니며 속옷 더미 사이사이를 힘차게 넘나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언니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대뜸 다가와서는 사이즈를 아냐고 물어봤다. 몰랐다. 가장 작은 사이즈는 75A니까. 나는 그거보다 한참 작으니까. 손에 들고 있던 핑크색 줄을 꺼내 서슴없이 내 가슴을 묶었다. 가슴 아래를 둘렀던 끈을 풀어 유두선을 지나도록 다시 감쌌다. 흰자가 보이도록 천장을 불끈 쳐다보았다. 잠시 암산을 하는 것 같았다.


"you're gonna fit with 30b. wanna try?"


라고 했던 것 같다. 이 말인즉슨 한국 사이즈는 65b(= 미국 사이즈 30b)라는 것이다. 이것을 한국 대체 사이즈로 환산한다면 75AA. 65b = 70A = 75AA. 둘레가 하나 커지면 컵이 하나 작아진다는 놀라운 논리다. 누가 만들어냈는지 참 거슬리는 방식이다. 어차피 둘레 65cm와 75cm는 천지차이일 텐데 말이다. AA에 삔또가 상하니 천지차이라는 둥 말도 안 된다는 둥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에게 맞는 속옷은 세상에 존재했다. 작은 가슴이라 속옷을 못 입는 게 아니고, 어쩌면 한국에서는 나에게 맞는 속옷이 없었던 것이다.


꼭 맞는 속옷을 입으니 없던 윗가슴살도 살짝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 거기 있었구나? 내 DNA에는 없는지 알았는데. 브래지어는 가슴에 뜨는 부분도 없었고 둘레도 맞춤처럼 딱 맞았다. 팔뚝으로 가슴을 눌러 모으면 가슴골이 생길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엄청 편했다. 컵 안에 가슴살이 동그랗게 첨벙 담겼다. 내 몸에 맞는 철사가 제 위치에서 가슴을 받쳐 줄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캥거루 새끼가 엄마 주머니 속에 있는 것 같이 내 가슴살도 알맞은 주머니에 담겨 참 아늑해 보였다. 이제 움푹 패이는 패드와 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티와는 안녕이었다.





이쯤에서 다들 문제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랬으리라 믿는다. 왜 저자의 가슴은 작을까? 아니다. 미국에는 있는데 왜 한국에는 없을까? 이거다. 미국의 사이즈는 어떻게, 왜, 그렇게 다양할까. 분명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 그만큼 다양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구수부터 차이가 크다. 미국은 약 3억, 한국은 약 5000만 명 정도로 6배에 달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빈유인 사람들은 소수다. 그래도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정말 다양한 사이즈를 생산해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국은 미국 사람들보다도 작은 체형이 많이 존재한다. 마른 체형도 많고 빈유도 생각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가장 작은 사이즈가 70도 아닌 75라니.


반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가장 큰 사이즈는 90C. 요즘 발육이 좋고 큰 가슴 DNA를 가진 친구들에겐 컵 사이즈 D도 작다. 외국은? 42G(95G), 44(100D)까지 나온다. 둘레도 두 사이즈는 크게 나오거니와, 컵 사이즈도 상상 이상이다. DD도 아닌 F도 아닌 G. 누군가에는 꼭 필요한 속옷일 것이다. 둘레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많은 범위까지 생산하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만들어 팔아볼까?


나중에 나는 이 문제로 작은 가슴 속옷 제작에 관심이 생겨 란제리 디자인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서울에 뻔질나게 발도장을 찍고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다 돈 때문이라고. 지금 둘레 75, 80, 90에 컵 A, B, C로 제작해도 벌써 9가지인데, 사이즈 늘리면 너무 많아진다고. 다양하고 복잡해 효율성이 떨어진단다. 무엇보다 70, 65 사이즈 만들면 몇 명이나 사겠냐고. 그거 공장에서 제작하는데 최소 수량을 맞춰야 하고 적게 생산하면 단가가 비싸지는데, 누가 만들고 누가 그 비싼 속옷 사겠느냐고.


이거구나! 블루오션이다! 아무도 안 하니 내가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작은 속옷을 제작하려 했을 때 정말이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싸면 인터넷에서 브래지어 한 개에 만원, 이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세상인데, 적은 양을 제작 주문하려고 보니 개당 육만 원은 족히 호가했다. 너무 비쌌다. 겨우 천쪼가리가 말이다. 조용히 포기하고 그냥 해외에서 직구로 주문해 입기로 했다. 자본주의에 두 손(두 발까지는 아니고) 들었다.





한국은 변해간다.


다행히 내가 문제를 인식할 즈음에는 식스티 에잇(홍콩 속옷 브랜드)와 같은 작은 사이즈도 생산하는 속옷 브랜드들이 한국에 입점했고, 점점 불편한 브래지어를 아예 입지 않는 노브라 운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현재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노와이어와 브라렛만 입는다. 또는 젖꼭지에 밴드만 붙이기도 한다. 옥죄이는 속옷을 모두 함께 벗어던진 것이다.


브라렛은 쫀쫀한 나시티에 패드가 붙어있는 구조다. 와이어가 없으니 다양한 가슴을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편한 속옷. 브라렛은 사이즈가 s, m, l 만 있다. 75A, 75B,..., 90C 등 엄청나게 다양한 사이즈를 생산해내는 기존 와이어 브래지어와는 달리 간단하다. 대량으로 물건을 뽑아내기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더 시중에서 빨리 퍼져나가고 흥행했을지도 모를 문제다. 그러면 어떠하리. 나에게 맞는 브라렛은 많다. 어찌 됐든 나도 이제 꼭 맞는 속옷을 입을 수 있다. 얇은 티도 마음껏 자유롭게 입을 수 있다.


세상은 아무래도 점점 자신의 인권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소수에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시대로 도래하는 것 같다. 득과 실을 따져도 서서히 소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겨우 브래지어 하나로 말이다.




덧붙여,


아, 물론 속옷을 입느냐 안 입느냐는 개인 취향의 문제다. 그런데 나는 맞는 속옷이 없어 맞는 속옷에 대한 집착이 생겼으며, 그 맞는 속옷을 찾았을 때의 희열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여전히 속옷 입기를 고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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