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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이 없어도

by 오이

요즘 유튜브, 인스타, 브런치까지 온라인에는 재미있는 것 투성이다. 말 그대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새가 없다. 말고도 친구와 지인들과 끊임없이 카톡을 날리며 소통한다. 내 앞에 누군가를 대면으로 만나면서도, 누군가와는 비대면으로 이야기한다. 또는 오지도 않는 카톡을 습관처럼 확인하고, 방금 전에 본 피드를 계속해서 새로고침 하기도 한다. 안 하면 불안하다. 핸드폰이 없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그렇다. 그런데 며칠전에 있었던 일은 생각보다 근사했다.


나는 일요일마다 오전 10부터 2시까지, 4시간의 요가 수업을 듣는다. 그날도 눈을 뜨자마자 대충 세수만 하고 집을 나섰다. 시작 5분 전에 요가원에 도착을 하고 나서야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온 것을 알았다. 가방에 분명히 챙긴 것 같은데 다른 가방을 들고 나온 것이다. 같이 수업 듣는 친구의 폰을 빌려 나의 연락을 기다릴 남자 친구에게만 문자를 남겼다. 아침부터 언제 일어나서 언제 집에서 나섰는지 연락 한통 없던 여자 친구에게 받는 문자 한 통이 고작 폰이 없다는 말에 그는 아마도 서운했을 거다. 그럼에도 나는 4시간의 고된 요가 수련을 마치고 친구들과 거한 식사를 했다. 하하호호 웃으며 지친 배에 든든하게 음식을 채워 넣었는데, 남자 친구는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밥은 먹었을까. 하고 문득 궁금해졌다.


집은 나선 지 6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요가 옷뿐이었다. 현관에서 내방으로 직행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없는 6시간의 금단현상이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내 방문을 열려고 문손잡이를 돌리는데 덜컥하고 움직이질 않았다. 몇 번을 돌려보고 문을 밀어 보아도 꿈쩍하지 않았다. 문을 닫지 않고 사는 편인데 난감했다. 아마도 오전에 부모님이 에어컨을 켠다고 잠금단추가 눌렸는지 모른 채 문을 닫은 것 같았다. 핸드폰은 방안에 고스란히 놓여있을 텐데 말이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외출한 상태였다. 집 전화도 없앤 지 오래. 핸드폰이 없으니 전화할 방법도 없었다. 너무 오랜만에, 아니,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10년 만에 문이 잠겼으니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알턱이 없었다. 불안감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휩쓸려왔다. 사람들에게 연락할 수단이 없어졌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떡하지.


잠시 소파에 앉았다. 아무도 없는 널찍한 거실에 언제 앉았던가 가물가물했다. 에어컨을 끈 지 얼마 안 된 듯 모든 문이 꼭 닫힌 공간에 냉기가 감돌았다. 꽉 막혀 있는 공간에 바깥소리도 쉽게 새들어오지 못했다. 정면에는 65인치 티비가 놓여있었다. 꺼져있는 커다란 티비 화면이 시커맸다. 검은 화면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 다시금 집 안에 나 혼자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갑자기, 핸드폰이 타의로 쓸 수 없게 되자 핑곗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했다. 눈을 감았다. 먼지가 내리앉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식구들이 돌아올 때까지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평온했다. 이런 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남들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기분이 생각보다 좋았다. 그리고 나는 단잠에 빠져들었다.


- 핸드폰이 방에 있었어. 문이 잠겼는데 열 수가 있어야지. 미안해-

저녁 7시가 돼서야 부모님이 돌아와 방문을 열어주셨다. 그제야 핸드폰이 내 손에 돌아왔다. 무려 10시간에 걸친 장정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을 남자 친구한테 톡을 남겼다. 다행스럽게도, 그이는 이해해줬다. 어쩌면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핸드폰이 없는 하루는 생각보다 꽤 멋졌다. 잠을 잔 시간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핸드폰이 손에 있었다면 잠은 자지 않고 게임이나 sns를 했을 것이다. 핸드폰 없이 당장 내 앞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집중하는 것이 좋았다. 몇 신지도 알 수 없었지만, 알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좋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집안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고요하게 혼자 앉아 멍 때리는 것이 좋았다. 멍 때리다가 솔솔 오는 잠에 슬며시 눈을 감는 순간이 좋았다. 나는 어쩌면 쉼 없이 붙들고 살아온 온라인 세계에 지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가끔, 핸드폰 없이 살아보려고 한다. 지금을 잠시 덮어두는 그 시간이 소중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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